‘사법농단’과 ‘재판거래’로 많은 사람 피해 입어…재심 폭 넓혀야
재판 공정하지 않으면 ‘정의로운 나라’는 빛바랜 슬로건에 불과

 2018년 11월19일의 전국법관대표회의 의결은 한국 사법역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로 기록될만하다. 전국의 판사대표 114명이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현직법관에 대한 탄핵을 사실상 요청했기 때문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이날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제2회 정기회의를 열고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판사들에 대해 탄핵을 요청해야 한다”는 취지가 담긴 ‘재판 독립 침해 등 행위에 대한 우리의 의견’이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의결했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법관대표회의는 선언문에서 “우리는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특정 재판에 관해 정부 관계자와 재판 진행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서 작성 등 자문을 해 준 행위나 일선 재판부에 연락해 특정한 내용과 방향의 판결을 요구하고 재판절차 진행에 관하여 의견을 제시한 행위가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위반 행위라는 데 대하여 인식을 같이 한다”고 밝혔다.

물론 이번 법관대표회의에서 통과된 ‘탄핵촉구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지 않다. 헌법상 법관의 독립을 위해 법관의 개인적 신분이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즉, 헌법 제106조 제1항은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刑)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 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법관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회와 헌법재판소(헌재)의 탄핵 절차로만 파면시킬 수 있다.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국회 재적의원(299명) 가운데 3분의 1 이상의 찬성으로 발의되며,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다. 이어 국회는 이 탄핵소추안을 헌재에 송달하고, 헌재는 심리를 거쳐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의 찬성으로 파면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현직법관 탄핵’이 현직법관들에 의해 요청된 것은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양승태의 대법원’이 재판거래 등을 통해 권력과 결탁해 대가를 받고 재판 결과를 청와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선고한 행각들이 대법원 자체 조사와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은 지난 7일 차한성 전 대법관을 소환 조사한데 이어 19일 박병대 전 대법관을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고영한 전 대법관도 조만간 피의자로 소환할 방침이다. 세 명의 전직 대법관들의 조사상황에 따라 ‘사법농단 몸통’이란 의혹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피의자로 검찰에 소환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이규진 전 양형위 상임위원의 업무수첩과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의 이동식저장장치 등에는 ‘사법농단 몸통’이 양 전 대법원장이란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써 대한민국 사법부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지난 세월 법관의 법과 양심에 따른 판단이 얼마나 잘못됐는가를 단적으로 웅변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양승태 대법원’이 위헌적 요소가 있는 상고법원만을 관철하기 위해 그런 무리수를 뒀을까. 그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뭔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가 양 전 대법원장과 법원 고위 간부들의 일상생활을 사찰한 사실은 필자가 지난 2016년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국회 청문회에서 밝힌 바 있다. 사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의 권력기관이 사법부 고위직들을 사찰해 적지 않은 약점들을 잡았을 테고, 이를 ‘사법농단’과 ‘재판거래’를 위한 압박수단으로 활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법원행정처장이 만나 무엇을 거래했겠는가. 상고법원은 명분에 불과하다.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그동안 ‘사법농단’과 ‘재판거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는가. 억울한 사람들의 한(恨)이 하늘을 관통하고 있다. 이제 ‘재판거래’와 관련된 모든 사건들에 대한 ‘재심’은 역사적 과제가 됐다.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나라’를 위해 반드시 이 사건들에 대한 재심의 폭을 넓혀야 한다. 차제에 모든 사건에 대한 재심의 폭을 넓히고 재심전담 재판부도 신설해야 할 것이다. ‘포용국가’의 중요한 국정과제라고 생각한다.
 고(故) 노회찬 의원은 ‘법은 만 명한테만 평등하다’는 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법은 평등해야 하는 것이 당위이다. 그러나 실제 법이 평등하다고 느끼는 국민은 거의 없다. 그러면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대부분의 법조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일반 국민 뿐 아니라 법조인들이 생각하는 법의 불평등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불법관행이, 이를 가능케 하는 주된 요인인 전관예우가 관통하고 있다.” 전관예우가 사법적폐 중의 적폐다. 노 의원이 법조인 15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3%

가 재판이 공정하지 않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정의(正義)는 공정(公正)이다. 재판이 공정하지 않으면 ‘정의로운 나라’는 빛바랜 슬로건에 불과하다. 율곡 이이(李珥) 선생은 감옥의 송사를 공정하게 처리해야 백성이 편안하다고 역설했다. ‘무학경독(毋虐煢獨) 무우고명(毋右高明)’을 강조했다.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을 학대하지 말며, 고위층을 두둔하지 말라”고 간곡히 말했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한국무죄네트워크대표‧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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