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조롱속에서도 혁신과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자동차 빅5에 들어
세계 차 시장 SUV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속 세단 고집…초심으로 돌아가야

1986년 현대자동차 포니엑셀은 엑셀(Excel)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처음으로 정식 수출되었다. 수출 첫 해 16여만대를 판매해 그 해 최다 판매 소형 수입차로 선정되었다. 이 기록은 미국에 수입된 자동차가 첫 해 판매한 대수로는 1945년 이후 가장 많은 것이었다.

당시 현대차 엑셀이 미국 시장에서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성공을 거둔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매우 싼 가격이지만 탈 만한 자동차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둘째, 엑셀이 처음 수출된 80년대 중반은 미국 가정이 1가구 2차량에서 세 번째 차량(Third Car) 구입을 본격화하는 시기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고 있었다. 약간의 논란이 있지만 셋째는, 미국 중산층 가장(家長)들의 장난감(Toy)에 대한 욕구를 꼽을 수 있다.

미국의 많은 중산층 가장들은 집에 간단한 정비 도구를 갖추고, 주말에 자동차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을 취미 생활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동차에 전자 부품의 장착 비율이 늘어나자, 일반인들이 취미로 정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즈음 출시된 현대차 엑셀은 기계식이면서 가격도 저렴해 어른들의 장난감용으로 구입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1990년 초 프랑스에 현대차 준중형 모델인 엘란트라(현 아반테)가 출시됐다. 유럽산 깡통차에 비해 풀 옵션을 장착하고도 소형차와 같은 가격을 달고 나와 상품성을 충분히 확보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엘란트라를 특집으로 다룬 한 자동차 전문잡지는 이 차의 가장 큰 단점으로 가격이 비싸다는 것을 꼽고 있다. 동급 유럽산 자동차 가격의 2/3 수준에 불과하지만, 품질이 워낙 떨어지기 때문에 품질 대비 가격은 오히려 비싸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위의 두 사례는 현대자동차가 해외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던 초창기에 있었던 웃지 못 할 에피소드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톱5에 들어가는 세계 굴지의 자동차회사로 우뚝 섰다. 지난 20년간 현대자동차는 높은 가격 경쟁력과 함께 품질 개선에 주력한 결과, 세계 시장에서 가장 눈부신 성장세를 나타냈다.

반면 현대차를 장난감 취급하고 조악한 품질이라고 손가락질 하던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은 그동안 부침을 거듭했다. 미국의 GM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500억달러(약 56조원)라는 천문학적인 미국 정부의 구제 금융을 지원 받고 겨우 회생했다. 포드 자동차와 프랑스의 푸조 자동차는 규모면에서 현대자동차그룹에 추월당한지 오래됐다. 크라이슬러 자동차는 이탈리아의 피아트 자동차에 합병 당하는 수모를 겪고도, 회사의 생존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이다.

그런데 지금 현대자동차의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임금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지만, 품질 개선은 한계 상황에 봉착했다, 설상가상으로 SUV 중심으로 재편되는 세계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세단형 자동차에 주력하는 우를 범했다. 그동안의 성과에 취해 조직이 관료화되면서, 내부에서 혁신적인 생산물이 더 이상 나오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빅(Big) 3’와 마찬가지로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 못한 거대 공룡처럼 변질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최근 중국의 동남자동차(东南汽车)가 1000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중형 세단을 출시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동남자동차는 1993년 현대자동차가 최초로 중국에 진출했을 때 합작법인을 설립했던 브랜드다. 이 회사가 출시한 A5 이우(Yiwu·翼舞)는 4만9900위안(806만원)에서 7만5900위안(1226만원)이라는 놀라운 가격표를 들고 나왔다. 현대차의 대표 중형차인 쏘나타 가격의 1/2 내지는 1/3에 불과하다.

중국에서는 A5 이우가 세련된 디자인과 수준급 인테리어 재질감에도 불구하고 800만원대의 가격에 출시됐다며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은 부정적인 의견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가격이 싸다고 해도 중국산 자동차의 품질은 아직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구입이 꺼려진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 자동차 전문 기자가 현대차 엘란트라의 품질 문제를 지적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반면, 800만원이면 3년 정도 타다가 버려도 아깝지 않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는 과거 미국 중산층이 현대차 엑셀을 장난감 취급했던 것과 닮은꼴이다. 현대자동차가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던 초창기 모습의 데쟈뷔(déjà vu)를 보는 것 같다.

몇 년 후, 중국 자동차회사들이 자사 제품을 조롱하고, 대충 쓰고 버리는 싸구려로 취급하던 현대자동차를 멀찌감치 따돌렸다는 보도를 접하게 될까 두렵다. 현대자동차가 초심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미래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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