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조선·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 상실…신성장 동력산업 적극 발굴해야

올해 들어 우리 경제의 화두는 ‘위기’다. 연말 모임에 나가보면 IMF 금융위기 때보다 상황이 더 안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대기업 직원들은 구조조정을 걱정하며 불안해한다. 자영업자들은 아예 아우성이다.

이를 반영하듯, 얼마 전 우리 사회에 영향력 있는 두 명의 경제학자가 현 경제 상황에 대해 입을 열었다.

먼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의 문제는 재벌이 너무 많이 가져가서도 아니고, 규제가 너무 많아서도 아니다"면서 “20년간 쌓인 투자 부족과 신기술 부족으로 주축 산업이 붕괴한 게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의 위기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고 최저임금 때문에 생긴 일도 아니다. 20년간 투자 안 하고 중국에 다 먹혀서다. 울산의 경우처럼 주력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면서 일자리가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음으로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실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경제위기의 본질이 결코 아니다’라는 글을 통해 현 경제 위기의 본질적인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이 글에서 그는 “한때 우리를 먹여 살렸던 조선업, 철강업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자동차산업마저 어려워진 상황”이라면서 “바로 이런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취약성이 우리가 맞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 교수는 또한 “실업률이 몇 %포인트 올라갔다거나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것은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현상이지 경제 위기의 본질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위의 두 경제학자는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로 철강, 조선,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 상실과 이를 대체할 신 성장 동력산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양극화 심화, 고용 불안, 자영업자의 위기 등은 주력 산업의 붕괴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의해 파생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체코의 철학자 카렐 코지크(Karel Kosík)는 그의 저서 ‘구체성의 변증법’에서 “본질은 현상 속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그리고 현상은 본질을 드러내기도 하고 은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상이 본질을 드러내는 역할도 하지만, 때로는 현상으로 인해 본질의 정확한 모습이 왜곡되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 경제의 위기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상적인 측면과 본질적인 측면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이에 맞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은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나타내는 지표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현상에 매달려 단기적인 대책에 매달리게 되면 본질적인 문제를 놓치게 된다.

물론 청년 실업을 포함한 고용문제와 자영업자의 위기 등은 서민의 실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재정 투입을 통한 공공 일자리 창출이나 카드 수수료 인하와 같은 단기 대책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아니다. 장하준 교수의 표현대로 하나의 ‘영양제’에 불과하다. 영양제를 맞고 약간 호전되었다고 근본적인 치료를 미루다가는 더 큰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제 정부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위기의 본질적인 문제, 즉 기존 주력 산업의 경쟁력 상실 원인을 파악하고 미래 산업을 발굴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는 산업·기업 구조조정, 규제 철폐와 함께

교육 개혁 등 사회 구조 전반을 혁신하는 프로젝트로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멀게는 김대중 정부부터 지금까지 서서히 진행된 결과로, 해결 방안을 도출하는데 많은 시간과 일부 계층의 희생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위기의 실체가 분명한 만큼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는 문제다.

인기가 없더라도 사회·경제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국민을 설득하는 확고한 비전과 용기를 정부가 가져야 할 시점이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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