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적기조례’ 제정으로 자동차 후발주자인 獨佛에 주도권 빼앗겨
당정, 카풀 도입 두고 ‘갈팡질팡’…거시적 관점에서 사회적 갈등 조정해야

19세기 말 영국에서 시행된 기관차량 조례(Locomotive Act)라는 것이 있다. 흔히 적기조례(Red Flag Act)라고도 불린다. 1826년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최초로 실용화되면서 새로운 이동 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그런데 자동차의 등장으로 실직 위기에 놓인 마부들이 대규모 자동차 반대 시위를 했다. 영국 정부는 마부들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발표한 것이 바로 적기조례다.

1861년 처음 발표된 적기조례는 몇 번 개정을 거치게 되지만,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말과 마주친 자동차는 정지해야 한다. ▲말을 놀라게 하는 연기나 증기를 내뿜지 말아야 한다. ▲교외에선 시속 6㎞, 시가지에선 시속 3㎞로 속도를 제한한다. ▲자동차는 운전수, 기관원, 붉은 기를 가지고 차량의 55m 전방을 걷는 사람의 3명으로 운용하는 것을 규정한다.

당시 자동차의 속도가 시속 30㎞에 달했지만 마차보다 느린 시속 6㎞로 제한시키고, 말들이 놀라지 않게 연기를 내지 못하는 규제로 인해 영국 자동차 산업은 후발주자인 독일이나 프랑스에 주도권을 뺏긴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적기조례가 처음 시행되던 1860년대 당시 영국은 이미 성장 동력을 잃어가던 시기였다. 이전 시대 산업혁명의 성과와 식민지 쟁탈전에서 승리로 압도적인 공업생산력을 지닌 영국이 혁신성장보다는 현상유지를 택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적기조례와 같은 우스꽝스러운 법이 비단 자동차산업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영국의 사회경제적 분위기가 유망한 기술혁신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사학자 미쉘 보(Michel Beaud)는 이 시기 영국을 ‘혁신과 기업가 정신의 쇠퇴’로 정의할 정도였다.

1870년대 영국의 석탄 생산은 미국과 독일의 생산을 합친 것 보다 많았지만 1913년에는 미국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철강업도 미국에 급속히 추월당했으며 1900년부터는 독일에도 뒤떨어지게 되었다. 자동화 기계의 채택을 주저해 당시 첨단산업에 해당하는 화학, 철강, 전기, 자동차 산업의 성장 속도가 미국, 독일 등 후발국가에 비해 현저하게 느렸다. 해외(식민지)에서 나오는 정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에 안주해 혁신성장을 외면한 결과 영국은 1870년대 이후에는 더 이상 세계경제에서 선두자리에 머무를 수단을 잃고 말았다.

1897년 빅토리아 여왕 시절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하는 관함식이 스핏헤드(Spithead) 해군기지에서 열렸다. 관함식에는 전함 50척을 포함한 함정 173척이 집결했다. 규모면에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가지지 못한 대규모 함대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영국 해군의 위용을 충분히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참가한 주력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구식 함정들이었다. 전함 50척 중에서 1만t이상 1등 전함은 22척에 불과했고, 120여척의 순양함 가운데 6000t 이상의 1등 장갑순양함은 31척밖에 되지 않았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영국 함대도 이미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78세의 여왕만큼 늙은 영국 함대의 19세기 마지막 수상 행진이 되고 말았다.

영국의 이같은 예는, 정부의 규제와 기업의 소극적인 혁신 기술 채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기득권 수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던 해외 수입원을 지탱해 왔던 해군마저 혁신을 외면함으로써, 영국은 20세기 들어 2등 국가로 전락하는 운명을 맞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카풀 서비스 도입을 두고 카풀업체와 택시업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리고 갈등을 조정해야할 정부여당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카풀 서비스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공유경제(모빌리티 서비스)의 출발점이라는 중요성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음 선거를 고려하다보니 택시업계의 의견도 무시할 수 없어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한 술 더 떠 아예 카플 서비스 자체를 폐지하라고도 한다.

카풀 서비스 도입을 카풀업계와 택시업계의 이익을 조정하는 좁은 시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4차 산업혁명의 출발점으로 보고 거시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더 나아가게 되면 다양한 직업군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또한 수많은 전통산업과 마찰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향후 밀려 올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기득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혁신을 외면하게 되면, 그들의 이익도 빠르게 사라져버린다는 영국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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