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넘어 패권전쟁 확산 우려…한국, 파급효과 면밀히 분석해 대비해야

2018년 4월3일, 미국은 무역법 301조에 근거해 약 500억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중국 상무부는 그 다음날 미국산 농산품과 자동차, 항공기 등에 같은 비율의 관세 부과로 맞대응했다. 맞불 관세로 시작된 미·중간 무역전쟁은 지금까지 미국이 2500억달러, 중국이 1100억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각각 관세를 부과하며 물러서지 않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초 미국과 중국이 무역역조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조기에 타협점을 찾을 것이라 점쳤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은 양국 간 무역역조 시정이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중국 견제는 오마바 정부 시절부터 꾸준하게 진행되어 왔다. 무역은 물론이고 차기 기술 패권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군사적 갈등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하게 걸쳐져 있다.

지난해 12월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G25 정상회담에서 만나 6개월 간 잠정적인 휴전을 선언했지만, 일련의 무역 갈등 문제가 조속하게 해결되기 어렵다고 전망됐다. 실제로 미·중 정상회담이 있었던 날 중국의 대표 IT 기업인 화웨이의 멍완저우(孟晩舟) 부회장이 대(對)이란 제재 위반을 이유로 캐나다에서 체포됐다. 뒤이어 미국의 주도로 세계 시장에서 화웨이 퇴출이 신속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화웨이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이다. 또한 5G 기술의 핵심인 사물인터넷(IoT) 분야에서 MS, 시스코 등 세계 유수의 기업을 제치고나갈 정도로 차세대 기술 분야에서도 선두주자로 평가받는 기업이다. 무역전쟁 휴전 기간 중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중국의 대표 IT기업인 화웨이를 겨냥한 것은 중국 통신장비 업계 견제를 넘어 차세대 기술 패권과 관련된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의도로 해석된다.

최근 미·중 양국 정상은 전화 통화로 현안 문제를 논의했다. 통화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큰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진핑 주석 또한 미·중 수교 40주년임을 거론하며 협력적이고 건설적인 양국 관계 발전을 강조했다. 오는 7일에는 미국 무역협상단이 중국을 방문해 협상에 들어간다. 하지만 무역협상을 통해 현재의 갈등이 해소될 것이라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올해는 무역전쟁을 넘어서 정면충돌이 더 격화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해 미국은 2500억달러에 달하는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했지만 무역역조는 더 커졌다. 더욱이 중국산 수입제품의 가격 인상으로 인해 자국 기업에도 피해가 속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번 화웨이 사태는 미국이 관세 폭탄 대신 중국 첨단산업을 직접 겨냥해 무차별 공세를 펼치는 전초전으로 볼 수 있다. 이에 중국은 최근 미국산 쌀 수입을 허가하는 등 무역 역조를 줄여 기술전쟁으로 확전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이 역력하지만, 현재 분위기로는 미·중 패권전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말 올해의 단어(Year in a Word)로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s trap)’을 선정한 바 있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새로 부상하는 세력이 기존 지배세력의 자리를 위협할 때 전쟁 등을 통해 해소하려는 움직임을 말한다.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당시 패권국가인 스파르타가 새로 부상하는 신흥세력인 아테네의 부상을 막기 위해 벌인 전쟁을 정의하면서 사용되었다.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 갈등이 무역전쟁에 그치지 않고 패권전쟁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패권 전쟁은 1~2년 안에 끝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최소 20년은 지속될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그리스 역사에서 보듯, 패권전쟁은 당사국은 물론이고 주변국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처럼 미국과 중국에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양국 갈등의 장기화 가능성에 좌불안석이다. 일본은 자국 주도로 결성된 CP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을 지난해 12월30일부로 출범시켜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 일본보다 미국과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더 큰 문제다. 위험 분산 차원에서 CPTPP 가입을 서둘러 미·중 양국 간 패권전쟁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술전쟁이 가져올 파급효과를 면밀히 검토해 대비해야 한다.

스파르타와 아테네 패권전쟁으로 테베 등 주변의 도시국가들은 동반 몰락했다. 하지만 변방 국가에 불과했던 마케도니아는 반사이익을 누려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우리나라는 테베처럼 될 것인지 마케도니아가 될 것인지 명심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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