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성장·소비 둔화 등으로 세계 경기에 심각한 영향 끼칠 듯
차이나 리스크 관리 못하면 정부의 경제 살리기 공염불에 그칠 수도

2004년 12월 25일, 미국의 신문사 경제부 기자 겸 전문작가인 사라 본지오르니(Bongiorni)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난 뒤 집안에 뒹굴고 있는 대부분의 물품들이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의 가족들은 이듬해 1년간 중국제품 없이 살아 보기로 결정했고, 그 과정은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A Year Without “Made in China”)’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여기서 사라 본지오르니는 중국 제품 없이 살 수 있을지 궁금했다고 밝혔다.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여겼지만 기대는 금세 무너졌다. 1년간의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과거에는 간단한 일들이 고통스러운 일로 변했다. 결국 미국인의 삶에서 중국 제품을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나라의 한 방송사도 2007년 9월에 비슷한 실험을 다룬 다큐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한·미·일의 평범한 한 가정을 선정해, 2007년 7월23일부터 8월22일까지 한 달 동안 집안에 있는 중국산 제품을 모두 없앤 후 생활하는 것을 지켜봤다. 실험 과정과 결론은 앞서 언급한 책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에피소드들은 당시 중국산 제품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면서 생긴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받아 들여졌지만, 그 이면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경제를 견제하고자 하는 각국의 경계심이 뚜렷이 깔려있다. 특히 중국 제품의 공습으로 자국의 제조업이 자리를 잃어 가는 것은 당연히 관심을 가질만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에 대한 각국의 경계는 값싼 중국산 소비제품 내지는 일부 부품에 국한됐다. 오히려 물가 안정과 소비자 편익의 측면에서 보면 중국산 제품의 순기능적인 역할도 있었기 때문에, 크게 심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값싼 제품을 세계 시장에 수출하는 공급자의 역할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막대한 무역 흑자와 거대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중국경제는 점차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10년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사회과학원이 작성한 ‘세계 경제 백서’에서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고 발표했다. 또한 백서는 “올해 중국은 기업인수 규모도 세계 2위를 기록했고, IMF 출자 비율은 세계 3위를 기록하는 있다”면서 “세계경제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2014년에는 중국이 구매력 기준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세계은행이 내놓은 국제비교프로그램(ICP)에 따르면, 2011년 구매력 평가(PPP) 기준으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의 87% 수준에 도달했다. 그리고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중국은 24% 성장한 반면, 미국은 7.6% 성장에 그쳐 중국이 앞서기 시작했다. 애초 전문가들은 2019년경에 중국이 미국을 뛰어 넘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빠른 경제 성장에 힘입어 세계 경제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확대되었다. 특히 소득증대와 함께 중국의 내수는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 부상했다. 2015년 이후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소비시장’으로 역할이 빠르게 변화해 나갔다. 중국이 공급자에서 소비자로 역할이 바뀐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급자로 머물러 있을 때에는 세계 경제 성장에 중국 경제가 영향을 받지만, 소비자로 지위가 바뀌면서 세계가 중국 경제 상황에 따라 등락을 거듭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난해부터 촉발된 미·중 무역 전쟁이 장기화 양상을 보이면서, 중국 경제에 경고음이 켜졌다. 경기가 둔화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제조업 위축 추세가 뚜렷하고 외국인 직접투자(FDI) 규모도 크게 줄었다. 지난해 3분기 경제성장률은 6.5%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는데, 올해는 6%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의 성장 둔화가 세계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2019년 시작과 함께 ‘애플 쇼크’로 인해 전 세계 증시가 요동쳤다. 애플의 실적 악화는 중국에서 부진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애플의 예에서 보듯이, 중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짐에 따라 ‘차이나 리스크’가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1월 4~5일에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의 최대 화두는 ‘차이나 리스크’였다. 행사에 참석한 경제학자 및 정책 당국자들은 세계 최대 소비국인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 미·중 무역전쟁 등 중국발(發) 리스크에 우려를 표시했다. 총회에서 발표된 500여 개의 보고서 중에서 중국 관련 보고서가 110건 달할 정도로 중국 경제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세계은행도 지난 8일 발표한 반기 보고서에서 거의 모든 국가의 올해 경제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는데, 미·중 무역전쟁으로 촉발된 중국의 경기 둔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10여 년 전 값싼 중국산 제품의 무차별한 공급으로 인한 차이나 리스크가 존재했다. 현재는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 올라선 중국의 소비 감소로 세계 각국의 경제가 영향을 받고 있어, 차이나 리스크의 파급효과가 더 커지고 심화되는 양상이다.

차이나 리스크가 커지면서 우리 경제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와 중국은 공고한 수직적

국제 분업 관계를 형성해 동반 성장을 이루어왔다. 1994년 수교 이후 중국은 단숨에 우리의 최대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중국도 우리 중간재 및 자본재를 바탕으로 세계 최대의 수출국으로 우뚝 섰다. 일례로 중국의 IT 기업인 화웨이 한 회사가 지난 4년간 20조원이 넘는 부품을 우리나라로부터 수입할 정도로 상호 의존도가 높다.

중국의 경기 둔화로 시장이 수축되면 그만큼 우리의 리스크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정부는 올해 경제 살리기에 총력전을 펼치겠다고 공언했지만, 차이나 리스크를 극복하지 못하면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차이나 리스크 대책반’을 가동해서라도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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