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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 박사의 알기 쉬운 경제] ‘광주형 일자리’에 거는 기대와 우려
지역 내 일자리 개수만 고집하다 기술개발, 생산성 제고 뒷전에 미룰 가능성 커
단순 위탁생산에서 자율주행자동차 핵심 담당하는 마그나 슈타이어 벤치마킹해야
2019년 02월 08일 (금) 09:34:39 이원호 webmaster@smedaily.co.kr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 큰 도시인 그라츠(Graz)에 ‘마그나 슈타이어(Magna Steyr)’라는 자동차 부품회사가 있다. 1901년에 설립 된 이 회사는 1970년대부터 벤츠, 폴크스바겐, 아우디, 크라이슬러 등의 일부 모델을 위탁 생산해 오고 있다. 전 세계 어떤 자동차 회사와도 협업해 ‘원하는 차종을 원하는 가격’에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마그나 슈타이어의 강점은 도요타 생산방식을 활용해 서로 다른 차종을 같은 물류시스템을 통해 공급 받아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인 데 있다. 철판 형태로 공장에 들어온 차가 완성차로 출하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유럽 내 다른 완성차 회사 공장의 ⅔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자동차 부품회사의 기술력과 오랜 기간 위탁 생산을 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제는 단순 생산을 넘어서 일부 차종은 개발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기도 한다. 특히 4륜 구동 분야에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어서 메르세데스 벤츠의 4매틱 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생산하고 있다. 또한 도요타의 고성능 모델인 ‘수프라’와 같이 판매 대수가 많지 않거나, 인기가 많아 본사 공장에서 공급이 부족한 차량의 물량을 받아 생산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자동차를 위탁 생산하고 있다.

최근 들어 모빌리티 서비스가 확산되고 자동차 산업의 경계가 모호해 지면서 이 같은 위탁 생산 전문 회사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실제로 애플이 자동차 생산을 위해 마그나 슈타이어와 협상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아이폰’ 제작을 대만 회사 폭스콘과 협업으로 외주 생산한 애플의 행보를 볼 때, 자동차도 외주로 진행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더욱이 아마존, 구글, 우버 등과 같은 IT 기업들이 자율주행차를 기반으로 하는 모빌리티 서비스 사업에 뛰어 들고 있어 앞으로 자동차 위탁 생산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자동차업계는 국내에서 주문자 제작(OEM) 방식의 자동차 생산을 늘리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과거에는 일본 업체들이 해외에 직접 투자한 공장이나 해외 OEM 방식으로 자동차를 생산해왔으나, 최근에는 일본 내 제조사와 OEM 방식으로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도요타, 닛산 등 거의 모든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OEM 생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내에서 OEM 생산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게 되면 자동차 회사들 간의 개성은 어느 정도 잃게 된다. 하지만 OEM 생산을 통해 자동차 업체들은 생산단가와 개발비를 줄이는 반면, 라인업은 늘릴 수 있어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세계 자동차 산업 환경이 갈수록 불투명해지는 시점에 일본 자동차업계가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세계 자동차 시장의 생산 패러다임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자동차 시장에 신규 참여하는 IT 기업들은 본사가 설계와 기술 개발, 마케팅 등에만 주력하고 생산설비 구축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다.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들도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다면 굳이 자사의 생산 라인을 고집하지 않는다. OEM 생산도 무방하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우여곡절 끝에 타결됐다. 광주시가 최대 주주(21%)인 시영 사업장으로, 현대자동차는 2대 주주(19%)로 참여해 이 공장에 자동차 생산을 위탁하게 된다. 주 44시간 근로에 연봉은 3500만원으로 직원 1000여 명을 고용해 지역 일자리 창출과 자동차 산업 경쟁력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목적으로 광주시가 먼저 제안한 사업이다.

앞서 언급한 해외 자동차 생산의 사례와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위탁 생산을 추진한다는 점에서는 맥락을 같이 한다. 특히 ‘광주형 일자리’는 기업이 임금의 절반을 부담하고, 지자체를 비롯한 정부가 나머지 부대비용을 책임져 자동차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사업 형태다. 이 모델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게 된다면, 우리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로 자리 잡은 일자리 창출과 경쟁력을 상실해가는 전통적인 주력산업에게는 가뭄의 단비가 될 것이다. 나아가 해외로 나간 기업들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 함께 우려되는 점도 있다. 최대 주주인 광주시는 지역 내 일자리 개수에만 관심을 가지고, 현대자동차는 노조와의 관계를 고려해 기술 개발과 생산성 제고는 뒷전으로 미룰 소지가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종업원들은 단순한 조립공으로 전락해 업무 만족도가 떨어지고 생산성이 정체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결국 반 값 임금으로 절반의 생산성과 절반 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하나마나 한 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단순 위탁 생산에서 출발해 자율자동차 시대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정도로 경쟁력을 확보한 마그나 슈타이어의 경험을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약간의 일자리 창출이나 몇 몇 차량을 값싸게 생산한다는 작은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생산 체제를 개척하는 각오로 사업에 임해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과 같은 첨단 기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광주형 일자리’의 예와 같이 ‘발상의 전환’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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