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적적으로 주주이익 극대화에만 집중하는 것은 ‘나쁜 선택’
종업원 이익 등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주식(stock)은 어느 기업의 소유권을 나타내며, 따라서 그 회사의 이윤에 대한 청구권이다.” ‘맨큐의 경제학’에 나오는 주식에 대한 정의다.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은 회사의 지분을 소유하며, 회사가 이윤을 낼 경우 이윤을 배당받는다. 하지만 과거 주주들은 주식 보유로 인한 자본 이익에만 관심을 두었을 뿐 기업들의 경영활동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금융회사의 방만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의 책임이 제기됐다. 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는 자성(自省)이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기관투자가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처럼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고,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해야 하는 행동지침이 도입됐다. 즉, ‘수탁자책임 원칙(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가 2010년 영국에서 도입된 것이다. 네덜란드, 캐나다, 스위스, 이탈리아, 일본, 말레이시아, 홍콩, 대만 등이 운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본격적으로 쟁점이 되기 시작한 것은 일부 기업의 오너 가족들이 사회적 일탈 행위로 국민적 지탄을 받으면서부터다. 마침내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대기업 주주의 중대 탈법이나 위법행위에 대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국민연금은 지난 1일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용한 첫 사례가 된 것이다. 물론 행사 범위는 정관변경 주주제안으로 최소화했지만, 정관에 ‘배임, 횡령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이사는 ‘결원’으로 본다는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조양호 회장의 사실상 해임 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총수 일가 지분이 30%에 달해 정관이 변경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진칼은 회사 측이 보유한 3분의 1 이상 주식 의결권을 사용해 안건을 부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조 회장의 이사 연임도 마찬가지다.

한진칼은 위기를 느낀 나머지 지난 13일 주주 친화적인 ‘한진그룹 비전 2023’을 발표했다. 금싸라기 땅(옛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인 서울 종로구 송현동 호텔 부지 매각과 배당 확대, 사외이사 확대 등을 골자로 한 향후 5개년 중장기 발전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특히 경영발전방안으로 ‘주주 중시 정책’과 ‘주주 가치 극대화’를 내세웠다. 한진칼은 “배당 성향을 확대해 2018년 당기순이익의 50% 수준 배당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한진칼과 한진에 감사위원회를 설치해 회사와 경영진을 철저히 감시함으로써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겠다고 했다. 한진칼은 그동안 풀빛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매각을 요구했던 송현동 부지(3만6642㎡)를 연내 매각, 그 자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해 경영권 방어에 나서는 한편 그룹의 사업구조도 선진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나름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국민연금은 이어 수년째 ‘1000원 배당’으로 유명한 남양유업에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용했다. 배당 정책 수립을 심의·자문하는 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정관 변경을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남양유업은 국민연금의 배당 확대 요구를 공개 거부했다. 보도자료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배당율을 높이면 51.68% 대주주 홍원식 회장만 더 혜택을 본다. 배당 보다는 사내 유보자금을 많이 비축해 경영위기에 대비하겠다. 무차입 경영도 저배당을 고수하여 가능했다.”

사실 남양유업은 지난 2013년 1월 대리점 상품강매사건이 불거지면서 회사는 큰 타격을 입었다. 출산율 저하로 분유 소비량이 감소한데다가 불매운동으로 매출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2018년 2월에는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87.8% 감소한 51억원, 같은 기간 매출액은 1조1670억원으로 5.8% 줄었고, 당기순이익은 65억원으로 82.4% 감소했다. 자업자득이지만 남양유업은 회사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의 세 번 째 적용 대상으로 ‘짠물 배당’ 기업인 현대그린푸드를 겨냥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 현대그린푸드의 지분 12.82%를 보유한 2대 주주다. 현대백화점그룹 오너일가와 특수관계인이 최대주주로 총 37.7%의 지분을 갖고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지난 8일 “2018~2020년 사업연도의 배당성향을 종전(6.2%) 대비 2배 이상 높은 13%로 강화하겠다”며 선제 대응에 나섰다. 그러자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14일 현대그린푸드에 배당정책 관련 주주 제안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 발 물러선 것이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결과, 한진칼과 현대그린푸드를 비롯한 투자기업들이 배당 성향을 강화하며 주주 친화적 자세로 전환하고 있다. 국내 증시 상장사들의 지난해 배당금이 사상 최초로 30조원 돌파가 무난할 것이라고 한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단기적으로 주주이익 극대화에만 집중하는 것은 ‘나쁜 선택’이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말까지 1년간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수익률이 고작 0.27%에 그친 것은 투자기업들이 사회적 일탈로 경영을 잘못했기 때문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 기금운용본부장의 장기간 공석, 잘못된 주식투자 운용 때문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단기적 이윤을 목표로 하는 투기펀드가 아니지 않는가. 주주 이익도 중요하지만 종업원 이익과 사회적 파장,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즉, 전체 이해관계자들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가령 ‘스튜어드십 코드’를 ‘기업 손보기’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지나치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사회정의 구현과는 거리가 멀다. 한진칼과 남양유업에 대해 정관 변경을 강요한 것은 무리수라는 지적이 많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에 관한 논리나 원칙, 기준을 정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첫 번째 원칙은 “기관투자자는 고객, 수익자 등 타인 자산을 관리 운영하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한 명확한 정책을 마련해 공개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원칙은 “기관투자자는 수탁자 책임의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이행을 위해 필요한 역량과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명확한 정책’을 마련하고 ‘역량과 전문성’부터 갖춰야 할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현재 초기단계다. 우리나라에선 제대로 된 이론과 정책이 정립돼 있지 않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기존 주식관리업무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단순한 증권사 리포트에 의존해 ‘선무당 사람 잡듯’이 섣부른 경영참여에 나서는 것은 오버하는 것이다. 우선 ‘약은 약사에게, 병은 의사에게’ 맡기듯이 여의도 증시와 상장기업 주총은 주식투자 전문가에게 맡겨 시장경제 논리에 순응하도록 관리 감독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심판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선수로 직접 시합에 뛰겠다는 것인지 납득이 안 간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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