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윤진표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3월 호주, 뉴질랜드와 인도네시아를 순방한 이명박 대통령은 ‘신아시아외교’구상을 발표하였다. 한반도 중심의 전통적 외교의 외연을 동남아, 서남아, 중앙아, 남태평양 등 아시아로 넓히고, 이 지역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비전인 Global Korea를 지향하기 위해 우선 아시아를 중심으로 함께 하겠다는 방향 설정을 환영한다. 글로벌 이슈의 해결을 위해 아시아와 협력하면서 공동이익을 실현해 나가고, 아시아 역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겠다는 것은 적절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신아시아외교’구상의 한 축은 동남아 지역 국가들에게 맞춰져야 한다. 동북아와 동남아를 포괄하는 동아시아지역으로 한국 외교의 내용을 심화시키고, 폭과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것은 우리의 국익과 직결된다. 아시아 지도에서 한국은 대륙의 동쪽에 있는 반도이지만, 지도를 뒤집어 보면 서태평양을 향해 튀어나온 교두보처럼 보인다. 바다를 향한 진출은 우리의 숙명적 과제이다.

그렇지만 대륙을 통한 교류보다 상대적으로 바다를 통한 교류의 역사는 잘 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의 고문서에는 이미 남중국해와 말라카해협 그리고 멀리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바다 길을 통한 교류의 흔적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바다를 통해 지리적, 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가져왔던 동남아 지역은 현대 한국과 더욱 발전된 관계로 나아가야 하는 필연적인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화와 지역화의 동시 진행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이고, 모든 나라는 상생의 정신으로 함께 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과 동남아의 관계는 이러한 추세에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다.

한국은 동남아 국가들과 외교안보, 무역투자, 사회문화 교류 등 모든 면에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우호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무역에서 동남아 지역은 중국과 유럽연합(EU)에 이어 우리의 세 번째 파트너로, 2008년 수출 493억 달러, 수입 409억 달러 등 총 902억 달러를 기록했다. 동남아는 우리가 늘 무역 흑자를 내고 있는 지역으로 가까운 장래에 제2의 교역대상지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는 한국의 세 번째 투자 대상지역으로, 1968년부터 2008년까지 총 290억 달러의 해외직접투자(FDI)를 기록했다. 또한 동남아는 한국에 중동 다음의 두 번째 건설시장으로, 1966년부터 2008년까지 총 540억 달러의 건설투자를 달성했다.

한국의 동남아 방문자 수는 1995년 110만 명에서 2007년 350만 명으로 12년 동안 3배가 증가했다. 2007년에는 동남아 사람 50만 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이 제공하는 공적개발원조(ODA) 수혜국 상위 10개국 중 5개국이 동남아국가들로, 캄보디아가 2위, 인도네시아가 4위, 필리핀이 5위, 베트남이 6위, 라오스가 7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동남아국가들의 지역협력기구인 아세안(ASEAN)과 2007년 상품 및 서비스 분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여 발효시켰고, 금년에는 투자 협정도 체결할 예정이다. 아세안과는 2004년 ‘포괄적 협력동반자관계 공동성명’, 2005년 ‘한-아세안 행동계획’을 통해 IT인프라건설, 인적자원개발, 환경, 에너지, 전염병 퇴치 및 문화교류 등에 합의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1989년 대화협력관계를 맺은 한국과 아세안은 금년 20주년을 기념하여 6월 1일과 2일 제주에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되었다.

이번 회의를 통해 한국과 동남아국가들이 지금까지의 협력관계를 질적으로 격상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우리 정부에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한국은 아세안이 안고 있는 역내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데 적극 참여하여야 한다. 아세안의 역내 문제들, 특히 환경, 이주노동, 전염병 같이 지역 거버넌스가 필요한 분야에 한국의 경험과 지식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빈곤문제 해소와 메콩강 유역 개발 등에 한국은 보다 구체적인 전략을 갖고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선택과 집중의 원칙아래 개발과 원조 그리고 투자 측면을 함께 고려한 새로운 개발원조이니셔티브를 구축하여 제시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한국은 동남아 각국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동남아 나라들은 경제사회적 수준에 차이가 크고, 각국의 정책도 상이한 경우가 많다. 한국의 개발 경험과 정책 사례를 동남아 각국에 맞춤식으로 적용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한국은 각국의 실정에 맞는 물적, 인적 자원 개발 방안을 지원하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해외 지원과 교류 업무는 부처 별로 지나치게 흩어져 있다. 전시적인 일회성 행사를 없애고,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과감한 정리를 해서 효과적인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셋째, 한국은 동남아 국가들과 미래를 위한 교육에 적극 나서겠다는 약속을 제시해야 한다. 교육은 가장 솔직한 시장이자 가장 보람 있는 투자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교육 인적 자원을 동남아 국가들과 나누고 협력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미래를 이끌어 나갈 청소년과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 대규모 교류 사업, IT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도서관 지원과 과학기술 협력 사업 등에 주목해야 한다. 동남아 각국은 한국의 인적 자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동남아에 부는 한류의 배경은 한국의 풍부하고 다양한 인적 자원에 대한 부러움이다. 우리는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외교는 곧 관계이고, 물적, 인적 관계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 성공적인 외교이다. 우리의 비교우위에 따른 차별화된 외교, 우리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한 선택과 집중의 외교가 금번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통해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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