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산업과 갈등·피해 불가피... 정부, 명확한 기준 세워 조정해야

정부가 지난 1월17일 도입한 ‘규제 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에 시행 첫날 기업들이 총 19건을 신청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하이넷의 도심 수소충전소 설치, KT와 카카오페이의 공공기관 모바일 전자고지 활성화, 우아한 형제의 자율 주행 배달 로봇 등 그동안 사업화가 지지부진하던 4차 산업혁명 관련 신산업 분야에서 주로 허가 신청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 샌드박스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할 때,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해롭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정부가 각종 규제를 일정기간 면제 혹은 유예해 주는 제도다. 어린이가 안전하고 자유롭게 노는 모래 놀이터처럼,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에서 기업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사업화까지 가능하도록 기회를 준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해 신산업 분야가 활성화된다면, 이 분야에 많은 투자를 기대할 수 있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가능해진다. 또한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 제고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이에 정부도 신청된 19건 중에서 수소차 충전소 설치를 규제 샌드박스 1호 사례로 신속하게 발표하는 등 규제 개혁을 통한 경제 살리기에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규제 샌드박스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문제도 많다. 새로운 산업이 출현하면 기존 산업이 위협받기 때문에 이해당사자간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규제 샌드박스 역시 혁신성장과 관련된 신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향후 신산업과 기존 산업 간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규제 샌드박스라는 강수를 둔 이상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후속 조치가 따라야 할 것이다.

첫째, 규제 샌드박스 시행과 함께 후속 입법을 완비해야 한다. 도심 수소충전소, 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TC) 허용 등 이번에 대상사업으로 선정된 분야는 대부분 각종 법규에 얽혀있어 곧바로 시행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규제 샌드박스 컨트롤 타워’를 설치해 법률적인 장애물을 깔끔하게 해결해야 할 것이다.

둘째, 법률적인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이해당사자들 간의 갈등은 생존이 걸린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현재 카풀과 택시업계의 마찰의 예에서 보듯 정부가 애매한 입장을 취한다면, 규제 샌드박스가 오히려 사회적 갈등만 부추기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규제 완화 이전에 정부가 먼저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시행해야 한다.

셋째, 규제와 관련된 결정이 정치권(정치인)과 정부기관(공무원)의 고유 권한이라는 생각을 버려야한다. 규제를 만들고 철폐하는 것은 철저하게 시장의 요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규제를 정치인과 공무원이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규제와 규제 철폐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원만하게 조정하는 것은 기대하기는 어렵다.

규제를 영어로는 ‘Regulation’이라고 한다. 이 단어는 ‘규제’의 뜻도 있지만 ‘조절’ 혹은 ‘조정’의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부당한 경쟁이 발생할 경우 정부가 나서 일정한 규제를 통해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도록 조절한다. 반대로 규제로 인해 새로운 산업의 성장이 방해된다면 규제 완화를 통해 문제를 조절해 나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규제 역시 시장의 원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고, 정부는 규제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번에 시행하는 규제 샌드박스가 혁신성장을 지향하는 만큼 규제 완화를 통해 신산업은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더욱이 피해가 불가피한 기존 산업에 대해서는 복지를 늘려 충격을 완화하고 교육을 강화해 새로운 산업에 흡수될 수 있도록 정부가 조정하는 역할을 충실해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면 안 된다.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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