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2차 핵담판이 결렬됐다. 일부의 우려대로 ‘디테일의 악마’를 극복하지 못했다. 다만 ‘파국적인 결렬’이 아니라 ‘합의도출 실패’이기 때문에 앞으로 3차 핵담판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핵폐기를 둘러싼 북미간의 줄다리기 핵협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답방도 상당기간 연기될 전망이다. 길고 지루한 북미 간의 ‘밀당’을 지켜봐야 하는 답답한 상황이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 오후 2시 15분(이하 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작성된 2차 북미정상회담 합의문이 적절하지 않아 서명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미국 측은 북한 영변 핵시설 해체와 그 이상의 ‘플러스 알파(+α : 새로운 핵시설 폐기)’를 원했지만 북한 측이 그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북한 측은 완전한 대북제재 해제를 원했으나 미국 측은 들어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는 생산적이었다”며 “악수도 했고, 서로 간에 따뜻함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서로 좋아한다. 우리 사이엔 따뜻함이 있었다. 내 생각에 이는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인간적 신뢰를 잃지 않았다는 뜻을 밝혀 향후 협상을 지속해 나가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예측했었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는 한 언론의 칼럼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진전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비핵화 협상의 세부사항을 조율하는 사전 논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과 트럼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비핵화 ‘속도 조절’을 언급한 점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하노이 핵담판’ 결렬에는 미국의 국내정치 상황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야당인 민주당은 ‘북핵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를 요구했다. 언론들은 ‘스몰딜’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게다가 타이밍도 좋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옛 개인 변호사인 마이클 코언이 27일(현지시간) 청문회에서 발언한 ‘불편한 진실’이 그의 ‘대담한 결단’을 위축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여론을 달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서두르지 않겠다’는 그의 ‘비핵화 속도조절론’이 이를 말해준다.

동북아 주변국들의 이해관계도 ‘하노이 판’을 어렵게 만들었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북한의 배후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열차로 장시간 중국을 통과해 베트남을 방문하는 것을 허용한 것은 절대로 공짜가 아니었을 터. 김 위원장은 중국이 제시한 미국에 대한 양보의 가이드라인을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아시아태평양 전략상 일본의 부탁을 완전 외면할 수 없는 입장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8일 중의원에서 “북한의 핵, 그리고 미사일은 일본에 큰 위협”이라면서 “(북핵의) CVID에 대한 우리나라(일본)의 입장을 미국에 확실히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베트남 하노이라는 회담 장소도 잘못된 선택이었다. 베트남의 천년 도읍 하노이는 어떤 곳인가. ‘하노이’는 ‘하내(河內)’다. 즉 강과 호수가 많은 ‘물속’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40여 년 전엔 베트콩의 소굴이었다. 평화가 아닌 전쟁의 도시였던 것이다. 회담장이었던 메트로폴 호텔에는 베트남 전쟁을 상징하는 방공호가 지금도 있다. 결국 2차 북미정상회담은 ‘물속’에 빠진 형국이 되고 말았다.

더욱이 물에서 나오려면 뗏목을 버려야 했으나 북한도 미국도 강을 건너면서 타고 온 뗏목을 버리지 못했다. 즉, 북한은 핵무기라는 뗏목을 버리지 못했고, 미국은 대북제재라는 뗏목을 버리지 못했다. 이틀 동안 뗏목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뗏목을 붙잡고 있다가 물에 빠진 것이다.

청(淸)나라 시인 왕사진(王士禛)의 ‘향조필기(香祖筆記)’에 ‘捨筏登岸(사벌등안)’이란 말이 있다. “뗏목은 버리고 언덕을 오르다”는 뜻이다. 이는 불교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인 ‘金剛經(금강경)’ 제6장에서 나온 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法 : 진리, 관념)’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汝等比丘 知我說法 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여등비구 지아설법 여벌유자 법상응사 하황비법 : 너희 비구들은 내 설법을 뗏목의 비유로 알아야 한다. 법도 마땅히 버려야 하는 것인데 하물며 법이 아닌 것이랴” 강을 건너려면 뗏목이 필요하지만 강을 건넌 다음에는 그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언어로 설해진 법도 그것에 의해 진리가 깨우쳐졌다면 버려져야 할 것으로, 언어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즉, 깨닫기 위해 필요로 했던 이론(法)에 더 이상 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앞으로 제3차 북미정상회담에선 김 위원장은 핵무기라는 뗏목을 버려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대북제재라 는 뗏목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평화의 언덕에 올라야 한다.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은 너무 앞서 나가지 않

아야 한다. “역사의 변방이 아닌 중심에 서서 전쟁과 대립에서 평화와 공존으로 진영과 이념에서 경제와 번영으로 나아가는 신한반도 체제를 주도적으로 준비하겠다”는 ‘신한반도체제론’을 성사시키려면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지극히 불투명한 정세 아래에선 ‘군자종일건건(君子終日乾乾), 석척약(夕惕若), 여무구(厲无咎)’란 말을 새길 필요가 있다. “군자가 온 종일 힘을 다하고 저녁에도 조심하고 근신하니, 비록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허물이 없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