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 부족과 시스템 부재로 ‘외교 실수’ 빈번히 일어나
대통령 국정운영에 부담 주지 말고 책임지는 모습 보여야

외교관은 1960~70년대 1등 신랑감 후보였다. 해외여행이 어려웠던 시절 외무고시에 합격해 세계를 누비는 외교관들이 미혼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그 위상을 높이게 된 배경에는 이들 유능한 외교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때문에 이들의 기여를 결코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한국 외교관들에 대한 평가는 낮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으로 답답하다.

18세기 프랑스 루이 14세의 특명전권공사로 외교와 협상의 달인이었던 프랑수아 드 칼리에르(Francois de Calliere)가 죽기 1년인 1716년 어린 루이 15세에게 보고한 ‘어느 원로대신의 협상에 관한 충고’는 외교관의 필독서다. 칼리에르가 이 책에서 “외교관은 국익관리의 최전방에 선 무사(武士)이며, 전문성이 없는 외교관의 임명은 ‘바보 수출’이다”고 강조한 바 있다. 외교관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구절이다. 그는 이어 외교관은 단호함, 끈기, 절제력과 자기관리능력, 올바른 몸가짐, 통찰력 등의 자질과 더불어 역사와 세계정세의 흐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우리 외교관들이 이런 자질을 갖추고 있을까. 특히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어떠한가. 필자가 만나본 상당수 외교관들은 매우 유능했다. 그리고 헌신적이었다. 애국심으로 다져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바보 수출’은 많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왜 ‘외교실수’가 빈번하게 빚어지고 있는가. 누구의 책임인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말레시아 국빈방문에서 최소 네 차례에 걸쳐 인사말 실수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후 시간에 저녁 인사말(Selamat malam·슬라맛 말람)을 하고, 저녁 시간에는 오후 인사말(Selamat petang·슬라맛 쁘탕)을 했다고 한다. 마하티르 총리와의 정상회담 때도 말레이시아 말이 아닌 인도네시아 인사말의 영어식 표현(Selamat sore·슬라맛 소르)을 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아방 살레후딘 말레이시아 문예진흥원장은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고 했다고 한다. 일부에선 큰 차이가 없는 인사말이라고 하지만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국가 원수의 표현은 적확해야 한다. 아무튼 아쉬운 대목이다. 이런 ‘외교결례’만 없었다면 문 대통령의 방문성과는 탁월했다는 게 현지의 전언이라고 한다.

앞서 이슬람 국가로 공공장소 금주를 규정하고 있는 브루나이 방문에선 하사날 볼키아 국왕이 주재한 국빈 만찬에서 ‘건배 제의’를 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아무리 양국이 합의했다고 하지만 일부 브루나이 참석자들을 당황시킬 수 있다는 점은 사전에 충분히 검토됐어야 했다.

또한 외교부는 2017년 8월 한·파나마외교장관회담에서 파나마 국기를 거꾸로 달았고, 2018년 11월 영문 트위터에 문 대통령의 체코 방문 소식을 알리며 체코(Czeh)의 국명을 체코슬로바키아(Czechoslovakia)로 잘못 표기했으며, 청와대는 최근 문 대통령의 캄보디아 방문 때 공식 페이스북에 캄보디아가 아닌 대만의 국가양청원(國家兩廳院) 사진을 올려 빈축을 샀다.

잇따른 ‘외교실수’는 ‘전문성 부족’과 ‘시스템 부재’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20일 국회 답변에서 “(청와대와 외교부 등에) 집중력이 없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직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강 장관도 “외교부로서는 참 아픈 실수”라며 “외교부 관련 사안에 실수해 우려를 드린 것에 대해 심심한 사죄를 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 외교 현장에선 1%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100% 다 잘해야 하는 게 외교다. 논란이 일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래서 책임문제가 제기된다. 순방행사의 의전을 담당한 외교부의 의전장과 대통령 의전비서관-연설비서관에 대한 문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강경화 장관도 책임을 져야 한다. 강 장관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바란다. 칼리에르의 지적한 바와 같이 외교부 장관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가? 한미관계, 한일관계, 한중관계 등에 무엇을 기여했는가? 한국외교 지평을 넓히는데 무엇을 공헌했는가? 왜 외교관들이 현장에 뛰고 있지 않는가? 무엇 때문인가, 누구 때문에 잦은 ‘외교실수’가 발생하고 있는가? 자진사퇴가 답이다. 또 다시 ‘외교실수’로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카네스 로드(Carnes Lord) 미국 해군대학 교수는 ‘통치의 기술(THE MODERN PRINCE : What Leaders Need to Know Now)’에서 통치 도구로서의 외교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내정과 대외 정책 사이의 전통적인 구분은 정치 지도자에게 큰 의미가 없다. 정부의 고위직으로 올라 갈수록 단순한 정보와 전문지식 사이의 구분이 무색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정치 지도자가 직면하는 이슈들이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가지를 치면서 정책결정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밀접한 상호 영향력을 갖는 국내 경제와 대외 경제문제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일반적으로 정치 지도자는 자신의 발언과 행동이 국내뿐 아니라 대외적 무대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늘 유념해야 한다.”

‘외교실수’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는 것을 국민은 원하지 않는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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