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김정일주의의 목표는 ‘사회주의 강성국가건설’
남북·북미회담으로 강성국가 핵심 핵무력 포기 쉽지 않아
김 위원장 연말까지 미국 용단 기다린다지만…강성국가건설 핵심은 핵무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4월 2일)에 대한 블룸버그통신의 최근 분석이 관심을 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6일(현지시간)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대화’나 ‘핵실험 재개를 통한 위기 재조성’이라는 기존의 선택지 대신 ‘기다림(wait)’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즉, 김 위원장이 “어쨌든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입니다”고 말한 대목에서 ‘기다림’이란 표현이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의 선택은 과연 ‘기다림’일까. 현재로서는 북한이 당장 미국과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설 것 같지는 않다.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우리도 물론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중시하지만 일방적으로 자기의 요구만을 들이 먹이려고 하는 미국식 대화법에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고 흥미도 없습니다”고 말했다.

‘핵실험 재개’ 또한 북한의 선택은 아닌 것 같다. 김 위원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 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 중지를 비롯한 중대하고도 의미 있는 조치들을 주동적으로 취하여 조미 적대관계 해소의 기본 열쇠인 신뢰구축의 첫걸음을 떼였으며”라고 ‘핵실험 중단’을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기다림’을 선택했다는 블룸버그통신의 분석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표면상 그렇다는 것이다. 좀 더 들여다보면 김 위원장의 선택을 ‘기다림’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김정은 체제의 사상과 정체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첫째, 김정은 체제의 지도사상은 ‘김일성-김정일주의’다. 이는 김일성이 창시한 주체사상, 김정일이 창시한 선군사상을 함께 조합한 국가건설사상이다.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여러 차례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강조했다. 따라서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이 김정은 체제의 지도사상 뿌리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둘째, 김정은 체제의 정체성은 당의 최고 강령인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에  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북한사회의 정체성을 확립하겠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도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실현하는데서 우리 앞에 나서는 기본투쟁과업은 사회주의 강국 건설 위업을 완수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 체제의 정체성 역시 그 뿌리를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에 두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한에선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이야기될 수도 없고 이뤄질 수도 없다. ‘김일성-김정일주의’가 알파요 오메가다. 남북대화, 북미회담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남북대화도 북미회담도 ‘그냥 만남’에 불과하다. ‘김일성-김정일주의’가 지향하는 범위 내에서만 대화나 회담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장은 ‘김정은 시대의 북한정치’에서 “김정은은 지금 ‘김일성-김정은주의’를 당의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주창하고 있고, 당·정·군 위에 군림하는 ‘수령’으로서 사상자원, 경제자원, 군사자원을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김일성-김정일주의’의 목표는 ‘사회주의 강성국가건설’이다.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 말미에 “모두 다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당과 공화국 정부의 두리에 굳게 뭉쳐 사회주의 강국건설 위업을 빛나게 실현하기 위하여 총진격해 나아갑시다”고 강조했던 것이 이를 말해준다.

핵무장은 강성국가건설의 핵심이다. 핵무기 없는 강성국가건설은 적어도 북한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이 제안한 북한 내 모든 핵무기를 국외로 반출하고 그 이후에야 제재를 해제하는 방식을 뜻하는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을 수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하노이 회담에서 의표를 찔렀다. ‘김일성-김정일주의’의 목표인 강성국가건설이 어느 정도 강고한지를 테스트한 것이다. 즉, ‘모든 대량살상무기의 파괴, 운반·생산수단의 완전한 제거’를 의미하는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했던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이 ‘빅딜 문서’로 제안했던 ‘핵무기와 핵물질 반출, 탄도미사일-화학·생물무기 폐기’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싸늘했다고 한다.

김정은의 선택은 분명하다. 단기적으로는 ‘모호한 비핵화’를 유지하면서 시간을 벌려고 할 것이다. 적어도 연말까지는 북한이 생각하는 ‘완전한 비핵화’ 개념을 분명히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틈새를 보일 경우 ‘핵무기 생산-판매 중단’이란 기존 카드를 다시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핵을 완전 포기하면 강성국가건설이 이뤄지지 않고 김정은 체제의 근본인 ‘김일성-김정일주의’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으나 북한이 이렇다 할 대답을 주지 않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정은의 장기적 선택은 이른바 ‘자주노선’이다. 현재로서는 그 윤곽이 들어나지 않았지만 먼저 체제를 정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자주는 우리 공화국의 정치철학이며 김일성-김정일주의 국가건설 사상에서 중핵을 이룹니다”고 했다. 수없이 ‘자주’와 ‘자립’을 강조했다.

서 북한은 지난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를 개최해 당과 국가의 지도부를 대폭 개편했다. 외교 라인의 대폭 강화와 국무위원회의 역할 확대, 리만건 신임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장의 핵심 실세로의 부상과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의 쇄신, 내각 엘리트의 위상 강화, 지도부 세대교체의 완성 등이 지도부 개편의 핵심내용이다. 새로운 ‘자주노선’을 위해 체제를 젊은 엘리트 중심으로 재편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합니다”고 주장했던 것도 ‘새로운 자주노선’과 맥락을 같이 한다.

차제에 청와대와 통일부는 북한의 ‘김일성-김정일주의’→‘강성국가건설’→‘핵무장’을 근본적으로 분석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 김정은 체제의 사상과 정체성을 무시한 남북대화는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북한을 바로 보자.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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