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레이션 놓고 유불리 따지기보다 대의민주주의 실현 여부가 중요

‘패스트트랙 열차’와 ‘21대 총선 열차’가 나란히 달리게 됐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오른 선거제 개혁법안은 270~330일 이후에는 국회 본회의에서 반드시 표결 처리를 거쳐야 하고, 2020년 4월15일에 치러지는 21대 총선은 340여일 남았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은 향후 상임위원회 심사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 90일, 본회의 부의 후 상정까지 60일의 기간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여야 간 충돌이 예상된다. 자유한국당이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관련, ‘의원정수 30석 축소·비례대표제 폐지’를 당론으로 채택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선거법 개정안이 이대로 처리될 경우 21대 총선에서 의석이 줄어들기 때문에 나흘 동안 선거제·개혁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놓고 ‘동물국회’를 불사하며 격렬히 저항했던 것이다. 핵심은 역시 ‘선거제도 개혁’이란 얘기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은 의회 민주주의 작동방식을 바꿀 수 있는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개정안은 지역구 225석·권역별 비례 75석 고정 및 연동률 50% 적용, 선거권 연령 만 18세로 하향 등이 핵심이다.

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의원정수는 현행대로 300명으로 유지되나, 지역구 의석이 현행 253석에서 28석이 줄어든 225석이 되고 비례대표 의석은 47석에서 28석이 추가된 75석으로 늘어난다. 4당이 지역구 28석을 줄이기로 한 것은 선거법에 따른 인구현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 인구 상한선은 30만7120명이고 인구 하한선은 15만3560명이다. 이 기준으로 봤을 때, 현재 253곳의 지역구 중 26곳이 인구 하한선에 미달한다. 반대로 인구 상한선 초과 지역은 2곳이다. 약간 조정될 수 있음을 감안해 ‘28석’을 줄이기로 결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인구 하한 미달로 통합 대상이 될 수 있는 지역은 정당별로 ‘민주당 10곳-한국당 10곳-바른미래당 2곳-민주평화당 3곳-무소속 1곳’이며, 권역별로는 수도권 ‘10곳-영남 8곳-호남 7곳-강원 1곳’이다. 인구 상한선을 넘어 분구 가능성이 있는 지역은 민주당 1곳(세종), 바른미래당 1곳(경기 평택을) 등이다.

CBS가 최근 지난 20대 총선에서 각 당이 획득한 지역구 의석수와 최근 정당 지지율을 대입해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130석(지역구 99+비례 31), 한국당 117석(지역구 94+비례 23),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27석(지역구 20+비례7), 정의당 16석(지역구2+비례14)’으로 나왔다고 한다. 앞서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선 민주당 123석(지역구110+비례 13), 새누리당(한국당 전신) 122석(지역구 105+비례 17), 국민의당(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의 전신) 38석(지역구 25+ 비례 13), 정의당 6석(지역구2+비례4) 등 이었다. 이런 데이터만으로 볼 때는 한국당이 불리하다. 그래서 한국당은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 지정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2018년 제7회 지방선거 결과에 따르면 한국당은 현행 선거법이 보다 불리할 수 있다. 오히려 ‘권역별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수용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2018년 지방선거의 광역의원비례대표선거 결과를 통해 21대 총선 권역별 비례대표 결과를 예측할 때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부산-대구-인천-경기 등 5개 지역 광역의원비례대표선거의 정당별 득표율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에서 민주당은 50.92%, 한국당은 25.24%, 바른미래당은 11.48%, 정의당 9.69%의 득표율을 얻었다. 부산은 민주당 48.81%-한국당 36.73%-바른미래당 6.73%-정의당5.44%, 대구는 민주당 35.78%-한국당 46.14%-바른미래당10.78%, 인천은 민주당 55.27%-한국당 26.43%-바른미래당 6.63%-정의당 9.23%, 경기는 민주당 52.81%-한국당 25.47%-바른미래당 7.78%-정의당 11.44%로 나타났다. 민주평화당의 경우 호남에선 많은 득표율을 올렸으나 서울 등 5개 지역에선 득표율이 미미했다. 이에 따라 전국 광역의원비례대표 87석 중 민주당은 47석, 한국당은 24석, 바른미래당은 4석, 민주당은 2석, 정의당은 10석을 얻었다. 그리고 시 도지사선거에선 전국 17명 중 민주당 14명, 한국당 2명, 무소속 1명이 당선됐다.         

물론 이런 선거 결과만을 놓고 21대 총선을 예단하는 것은 무리다. 여당의 지지율이 2019년에는 2018년 지방선거보다 크게 하락했고, 2020년에는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1대 총선은 20대 총선 때와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21대 총선은 촛불혁명으로 진보진영이 강화된 이후 처음 치러지는 총선이며, 민주당이 7회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정부의 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치러지는 총선이기 때문에 그런 분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또한 남북관계, 북미회담 등 변수도 많지 않는가.

자유한국당 정당해산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참한 인원이 30일 오전 9시20분 100만 명을 넘어선 것도 예사롭게 볼 상황이 아니다. 민주당과 정의당이 국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각각 한국당 의원 29명과 40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것도 중대변수다. 한국당 의원들이 국회법 165조와 166조를 위반한 혐의로 고발된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벌써부터 일각에선 정계개편으로 이러질 수 있다는 성급한 분석까지 나온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의 슬로건이다. 이는 대의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선거라는 얘기다. 데이비드 파렐(David Farrell) 아일랜드 더블린대 교수는 ‘선거제도의 이해’에서 “선거제도는 민주주의라는 수레의 큰 바퀴가 잘 굴러가도록 하는 작은 톱니바퀴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공직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선거제도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무리 없이 작동하게 하고 정당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87년 체제’의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매우 후진적이다. 승자독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다수 정치학자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 향상을 위해 현행 선거제도는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한국당의 ‘의원정수 30석 축소·비례대표제 폐지’는 성숙한 민주주의 시대에 맞지 않다고 본다. 성숙한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연대와 공존의 연합정치’로 가는 선거제도 개혁을 놓고 대화와 협상에 나서야 할 것이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 회장·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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