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독립 위한 ‘임명’ 개정 주장, 사실이 아닌 것으로...

대통령이 KBS 사장에 대해 ‘임명권뿐만 아니라 해임권도 갖느냐’ 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지난 2000년 통합 방송법 제정 당시 ‘임명 (任命)’ 과 ‘임명(任命)’ 이 혼용됐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통합 방송법안 발의문에서부터 상임위(문화관광위) 전문위원 검토보고서, 상임위 대체토론 등 입법 전 과정에서 종전의 ‘임면’이 ‘임명’으로 변경·사용됐지만, 어느 대목에서도 변경 취지에 대한 별도 설명이 없었던 것으로 조사돼 ‘공영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임면이 임명으로 바뀌었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999년7월 신기남 의원 주도로 새정치국민회의 의원들이 공동발의한 통합 방송법안에 따르면, ‘한국방송공사법을 방송법으로 통합하고 사장은 방송위원회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기존의 한국방송공사법에 적힌 ‘임면’ 이 ‘임명’ 으로 바뀐 데 대해선 아무 설명이 없었다.

같은 달 문화관광위 수석전문위원 명의의 법안 검토보고서에서도 사장 선임과 관련, 현행 ‘이사회 제청, 대통령 임명’ 을 ‘방송위원회 제청 ⟶대통령 임명’으로 개정하려 한다는 내용만 적고 있을 따름이며 다른 설명은 없었다.

즉, 사장 제청권이 이사회에서 방송위원회로 넘어 가는 것에만 주목했을 뿐, ‘임명’ 이란 단어는 기존 한국방송공사법에 적혀 있는 대로 인용한 것으로 검토보고서는 설명했다.

뒤이어 문화관광위에 법안이 상정된 뒤 벌어진 대체토론의 속기록을 보면, 한나라당 박종웅 의원이 먼저 “한국방송공사법을 통합 방송법에 포함시켜 달라진 것이 KBS 사장 임명권을 KBS 이사회가 가지고 있다고 이제 방송위원회에서 가지게 되었다” 면서 “KBS를 앞으로 방송위원회 부설방송사를 만들려고 하는가” 라며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과 법안 발의자인 신기남 의원의 해명을 요구했다.

이에 박 장관은 “박종웅 위원께서 KBS사장을 방송위원회가 임명토록 한 것은 KBS를 방송위원회로 종속시켜려하는 의도가 아니냐라는 말씀을 하셨다.” 면서 “KBS사장을 방송위원회가 제청하도록 한 것은 독립적인 기구인 방송위원회가 적임자를 선정하도록 해 공영 방송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신기남 의원은 “KBS사장을 이사회가 제청하는 것이 아니고 방송위가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한 것은, KBS 이사진의 기본구도가 업무의 능률성, 효율성을 강조하는 집행이사제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집행이사제를 택할 때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답변했다.

이를 종합해보면, 당시 야당 의원들은 통합방송법에 새로 등장하는 방송위원회가 공영방송을 장악할 가능성을 집중 성토했고 정부와 여당은 이를 방어하는 데 주력했을 뿐, 사장 임면이 임명으로 변경된 데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야당의 반발로 통합 방송법안은 사장 제청권을 종전 대로 KBS 이사회가 갖는 것으로 수정돼 최종 통과됐다.

심재철 의원은 이와 관련, “통합 방송법안 발의문에도,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도, 심지어 상임위 대체토론에서도 ‘임면’ 이 ‘임명’으로 변경된 데 대해 일정 언급이 없었다는 점은 두 단어가 혼용됐다는 방증”이라면서 “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임면을 임명으로 바꿨다’ 는 일각의 주장은 근거 없는 억지논리” 라고 비판했다.

심 의원은 또 “당시 여당은 한국방송공사법을 폐지해 통합방송법의 일부분으로 편입 시키고 막강한 권한을 가진 방송위원회를 출범시켜 방송장악을 시도한다는 비난을 받던 시기였다”고 전제하고 “그런데 거꾸로 사장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을 축소하려 했다는 주장은 당시 흐름과 안 맞는 어불성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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