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정책 아닌 소득주도성장 밀어 부치다 조기에 사라져
중소벤처부 미래 비전 제시 못해…혁신 성장 정책 제시해야

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중소·벤처 중심의 혁신성장 정책이 갈수록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다. 정부 출범 초기에 성장 정책은 ‘사람중심’을 기본 철학으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의 양대 축으로 구성됐다. ‘사람중심’이라는 용어가 가지는 의미는 그동안 대기업·수출 중심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심화된 양극화를 해소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소득주도성장으로 계층 간 소득 격차를 줄이고, 혁신성장으로 대·중소기업의 기술 격차를 줄여 나가겠다는 정책으로 이해된다.

이 중에서 소득주도성장을 가장 핵심적인 정책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중·하위계층의 소득을 증대시켜 내수를 진작하고, 이를 통해 성장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수출 중심 성장 정책이 가지는 지나친 대외 의존도를 줄이면서 안정적으로 성장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은 가장 먼저 좌초됐다. 지난해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과 장하성 정책실장이 2선으로 물러나면서 청와대 내에서도 소득주도성장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소득주도성장은 애초에 성장 정책도 아닌 것을 성장 정책으로 밀어붙인 만큼 조기에 사라진 것은 크게 놀라운 현상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혁신성장 정책마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애초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의사결정이 신속한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해 성장 잠재력을 확보해 나가겠다는 전략은 올바른 선택으로 보였다. 더욱이 그동안 우리 경제를 떠받쳐 온 대기업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 혁신적인 중소벤처기업의 출현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이에 정부는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하고, 기존의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격상하는 등 중소·벤처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혁신성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도대체 왜 만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중소벤처기업부도 출범 이후 중소기업을 위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예전 중소기업청 시절의 업무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혁신성장을 이끌고 나가야 할 부처가 제 역할을 못하게 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 철학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 경제는 지금 정부의 전방위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정부가 자신만만하게 추진했던 일자리 창출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기업의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소비도 살아나지 않고 있다. 경제성장률도 매년 2017년 이후 매년 하향 조정되고 있다. 그나마 버텨주던 수출마저 연초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고 있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소득격차가 오히려 확대되는 등 양극화를 해소하지도 못하고,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어 성장이 정체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정부의 정책은 이전의 경기부양책을 답습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시간을 요하는 혁신적인 중소·벤처기업의 육성보다는 결국 대기업과 손잡고 투자를 확대하는 손쉬운 방안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2일 정부와 청와대가 비메모리 반도체, 바이오, 미래형 자동차를 ‘중점육성 산업’으로 선정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정책역량을 집중한다고 발표한 것은 누가 봐도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을 염두에 둔 정책이다. 더욱이 대통령이 연초 수소경제 전도사를 자처하고, 얼마 전에는 삼성전자를 방문해 비메모리 반도체사업 육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정부의 성장 정책 방향이 이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현 정부 경제 철학의 근간인 ‘사람중심’을 포기하는, 즉 ‘도로묵 정책’으로 회귀를 의미한다.
    

물론 정부의 정책 방향이 바뀐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우리 경제가 대기업·수출 중심으로 성장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하루아침에 이들을 배제하고 내수를 진작시켜 수출 비중을 낮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의 경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대기업과 협력해 위기상황을 탈출하려는 시도는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중소벤처기업 및 스타트업을 포기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정부에서 발표한 비메모리 반도체, 바이오, 미래형 자동차 등 3대 중점산업에서 대·중소기업 협력 및 중소벤처기업 육성 방안을 보완해 다시 발표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사정이 딱하다고 미래를 팔아버리면 안된다. ‘사람 중심’의 경제 철학은 고수해야 한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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