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련, 한노련 각각 집단 이익에 맞게 최저임금 수준 통계 자료 가공
수혜 대상서 피해자로 전락한 중·하위계층에겐 도움이나 위안 안 돼

2017년 이후 급격하게 인상되고 있는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일 한국경제연구원(한경련)은 한 연구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상위권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최저임금 8350원을 기준으로 하면 국민총소득(1인당 GNI) 대비 최저임금은 최저임금 제도가 있는 OECD 28개 국가 중에서 벨기에와 함께 공동 7위라 한다. 주 15시간 이상 근무했을 때 지급되는 주휴수당을 포함할 경우에는 1만30원으로 OECD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이에 한국노동사회연구소(한노련)는 곧바로 한경련의 주장을 반박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김유선 한노련 이사장이 작성한 ‘최저임금 수준 국제비교’에서 올해 한국의 최저임금은 6.4유로로 OECD 회원국 평균(6.4유로)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순위는 25개국 중 12위로 중간 수준이다. 또한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2017년 41.4%로 OECD 평균(41.1%)과 거의 같다. 이는 법정 최저임금 제도를 운영하는 OECD 29개국 중 15위인 중간 수준으로 한경련이 보고서에서 말하는 ‘최고 수준’은 잘못되었다 말하고 있다.

그런데 최저임금을 둘러싼 한경련과 한노련의 논쟁은 문제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났다. OECD 회원국 중에서 몇 번째로 높은 순위에 있는 것은 참고 사항이 되겠지만, 지난 2년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자영업자나 영세 중소기업에게는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결국 기업(특히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경련이나 노동운동의 대표적 싱크탱크 역할을 담당하는 한노련이 각각의 집단 이익에 맞게 통계 자료를 가공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이다.

최저임금의 인상이 문제가 되는 것은 급격한 인상에 있는 것도 아니고, OECD 회원국 중에서 순위도 아니다. 핵심은 정부가 경제상황을 고려해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대통령 선거 공약에 맞추기 위해 정부가 깊은 고민을 하지 않고 내놓은 것이다. 경제가 불황국면에 접어드는 시기에 앞뒤 생각도 없이 급격한 인상을 단행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양극화 해소의 수혜 대상이 되어야 할 중·하위계층이 오히려 피해를 보게 된 상황을 지적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의 실패를 보완하는 효과적인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언급한 두 연구소의 최저임금의 국제비교와 순위 논쟁은 참으로 부질없다. 이런다고 무너져가는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인에게는 조금도 도움이 되거나 위안이 되지 않는다.

작년 이맘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통계청은 가계동향조사에서 2018년 1분기 소득 하위 20%(1분위)의 소득이 역대 최고치인 8%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공을 들인 정부로서는 당황스러운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에 노동연구원은 곧바로 하위층 소득 감소 폭이 사상 최대라는 통계청의 발표는 부정확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노동연구원은 “통계청 조사 결과를 재검토하면, 평균 가구 소득 증가율이 많이 높아지고 최하위 소득집단의 소득이 많이 감소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며 “분배가 악화한 것은 고소득 가구의 소득 증가 폭이 더 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것 역시 최저임금 국제 비교만큼 공허하다. 통계 자료를 재검토한다고 하위 계층의 실질적인 소득은 증가하지 않는다.

각각의 이익집단이 과도하게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목소리(때로는 왜곡된)를 내 정부 정책을 흔드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부도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에는 ‘정치를 가장 잘하는 자는 자연스러움을 따르고, 그 다음은 이익으로써 백성들을 이끌고, 그 다음은 깨우치도록 가르치고, 또 그 다음은 백성들을 가지런히 바로잡는 사람이고, 가장 못하는 자는 백성들과 다투는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어느 것을 취하고 어느 것을 버려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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