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만 ‘통합과 갈등 치유’를 떠들게 아니라
민주 인권 평화 수호하기 위한 정신 훼손 말아야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우리들의 아들은/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우리들의 귀여운 딸은/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찢어져 산산이 조각나버렸나”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을 때마다 한 번씩 가슴으로 불러보는 김준태 시인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의 한 대목이다. 5·18민주화운동의 비통을 서사적으로 형상화한 시로 기념식 때 자주 낭송된다.

5·18민주화운동 39주년인 올해는 유난히 시끄럽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무겁다. 왜 이렇게 혼란스러운가. 여야 합의로 지난해 2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지연작전으로 진상조사규명위는 아직도 구성되지 못하고 있고,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한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정치권에서 폄훼와 망언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광주에선 ‘5·18=폭동’이라고 망언한 의원 징계를 유보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비판 집회로 이어졌고, 황교안 대표가 지난 3일과 18일 두 차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5·18민주화운동은 동학농민혁명, 3·1운동, 4·19혁명을 계승하며, 6월 항쟁과 촛불혁명의 밑거름이 됐다. 민주 인권 평화의 가치를 죽음을 무릅쓰고 지킨 세계사의 유례가 없는 민주화운동이다. 유네스코가 2011년 5월25일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것도 그 역사적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각에선 5·18민주화운동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5·18정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5·18민주유공자는 사망행불자 181명, 부상자 2762명, 기타희생자 1472명 등 총 4415명이지만 아직 이들의 완전한 신원(伸寃)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5·18’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제 5·18민주화운동을 둘러싼 정치 사회적 논란은 하루빨리 정리돼야 한다. 입으로만 ‘통합과 갈등 치유’를 떠들게 아니다. 진상규명과 함께 ‘5·18정신’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바른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특히 ‘5·18정신’의 역사적 연원과 그 전개를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르게 알고 나면 5·18유공자를 ‘괴물집단’으로 매도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5·18정신’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광주라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할 때,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호남인들의 혈맥을 통해 이어져 왔다.

첫째, 5·18정신은 ‘홍익인간’ 정신에 뿌리를 두고, 조선시대 지배자의 덕목보다 피지배자의 보호에 주목했던 김시습-서경덕-이이의 ‘주기론(主氣論)’을 계승한 정여립의 대동계(大同契)가 실천한 ‘고통이 없는 사회’, ‘나눔의 사회’의 ‘대동(大同)정신’을 이어받았다. 5·18민주화운동 때 밥 빵 김치 등을 나눠먹은 ‘절대공동체’를 이룬 것도 이런 바탕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5·18정신은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이어받았다. 동학농민혁명은 ‘하느님이 내 안에 있으면 내가 곧 하느님’이라는 ‘시천주(侍天主)’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인내천(人乃天)’과 의미가 같다. 따라서 동학농민혁명 정신은 ‘평등’이며 ‘주체적 인간화’다. 그냥 모든 인간이 동일하다는 것이 아니다. ‘밝고 순수하며 근원적이고 신령스런 존재’로서의 인간은 신과 같은 차원의 영적 존재라는 것이다. 동시에 동학농민혁명 정신은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보국안민(輔國安民)’의 정의(正義) 애민(愛民) 민주(民主) 정신이다. 나아가 ‘척양척왜(斥洋斥倭)’의 ‘민족자주정신’이다. 그래서 김남진 박사는 “5·18광주정신은 민주 인권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정신”이라고 했다.

셋째, ‘5·18정신’은 구한말 일제의 침략정책에 처절하게 저항한 항일의병운동과 일제강점기 1929년 11월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정신이다. 당시 의병과 학생들은 모두 한 마음(同心·동심)이었다. 민족자주독립을 위해 양반도 상민도 없었고, 남녀 구별이 없었다. 모두가 ‘동심창의(同心倡義)’했으며 항일자주독립을 외쳤다. 이를 줄이면 ‘동의(同義·의로움을 함께 함)’다. ‘5·18정신’도 ‘동의’가 키워드다.

넷째, ‘5·18’정신은 ‘광주3·15의거’의 반독재민주화 정신이다. ‘광주3·15의거’는 1960년 3월15일 이승만 자유당 독재 정권유지를 위한 부정선거에 맞서 광주 시민과 학생들이 이에 항의해 일어난 시위로 자유‧민주‧정의를 위해 싸운 4·19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반독재민주화 의거이며, 1980년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의 시원이다. 광주 금남로에서 발생한 ‘광주3·15의거’가 ‘5·18민주화운동’의 축소판이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원래 정신(精神)의 ‘精(정)’은 ‘米(미)’와 ‘靑(청)’의 합성자다. ‘米(미)’는 곡물 알갱이의 껍질을 벗겨 낸 후 들어나는 씨 부분을 말한다. ‘靑(청)’이란 하늘을 뜻하는 푸른색이다. ‘精(정)’은 근본 정령 광명 순수 등의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神(신)’은 ‘示(시)’와 ‘申(신)’의 합성자다. ‘示(시)’는 신에게 제사지내는 제탁의 모양이고, ‘申’은 번개의 모양이다. 옛 사람들은 번개를 신의 조화라고 여겼다. 그래서 신령스러운 존재를 ‘神(신)’으로 표현했다. 따라서 정신(精神)은 ‘근본적이고 순수한 신령스런 존재’를 뜻한다. 생명의 씨앗이며 상생의 이치를 지닌다. 영어도 정신을 ‘영(靈)’의 의미를 지닌 ‘spirit’라고 한다. ‘ㅇㅇ정신’이라고 할 때의 ‘정신’은 ‘하늘’과 같이 거룩하고 신령스러운 의미를 지닌다. 이는 의지나 기백, 혼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5·18정신‘은 정여립의 대동계가 ‘고통이 없는 사회’, ‘나눔의 사회’를 이루려했던 ‘대동’의 염원, 동학의 ‘보국안민-척양척왜’의 평등과 반외세-자주의 함성, 항일의병의 ‘동의’의 민족자주의 민족혼,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민족자주 애국정신, ‘3·15광주의거의 민주정신을 계승한 순수한 의(義)의 혈(血)이며 생명의 혼이다.

5·18민주화운동이 한국 민주주의의 분수령이 되는 1987년 ‘6월 항쟁’의 동력이 되어 민주주의 쟁취와 인권회복으로 이어졌고, 2016-2017년 ‘촛불혁명’의 밑거름이 된 것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5·18정신’을 남북통일을 견인하는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도록 온 국민이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5·18정신’은 반드시 헌법 전문에 담겨져야 한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 회장·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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