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쟁 심화되면서 군사적인 충돌로까지 발전할 수도
최대 피해자는 양국 소비자…한발씩 물러나 조화 모색해야

국제경제학원론을 처음 배울 때 영국의 경제학자 리카르도(David Ricardo)의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론’을 가장 먼저 접하게 된다. 각각의 나라는 부존자원의 차이에 따라 특화되는 산업이 달라진다. 따라서 모든 나라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산업에 집중해 가장 경쟁력있는 제품을 생산·수출하고, 필요한 나머지 물건은 다른 국가와 무역을 통해 조달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게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무역의 발생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국제경제학에서는 비교우위론을 맨 앞에 언급하고 있다.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은 19세기 초 영국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산업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하고, 곡물법(Corn Law)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지주를 공격하기 위해 나왔다. 이 주장을 계기로 영국은 곡물법을 폐지하는 등 보호무역 정책을 버리고 자유무역으로 전환하였다. 당시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영국의 공산품이 전 세계로 수출하는 데 필요한 자유무역주의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다. 반면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는 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후진국이었던 독일과 미국은 관세부과 등을 통해 유치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했다.

이처럼 국제무역의 역사는 경쟁력이 우위에 있는 국가의 자유무역주의와 경쟁력 열위에 있는 국가의 보호무역주의가 서로 대립하면서 진행되어 왔다. 특히 경제가 호황 국면에 접어드는 시기에는 자국 상품의 해외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자유무역주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으며, 불황의 국면에는 자국 산업 보호를 우선하는 보호무역주의를 경쟁적으로 시행하는 일이 반복되어왔다.

자유무역주의의 종주국인 영국도 19세기 중반에는 자유무역주의를 강력하게 추진했으나,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후발 선진들과의 치열한 경쟁과 1930년대에 대공황을 맞아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섰다.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고립주의의 틀 안에서 전통적으로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하였다. 특히 대공황 시기에는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을 제정해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시행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나머지 국가들의 대미 보복 관세로 이어져 국제무역이 감소하고 대공황을 세계적으로 확산시켰으며, 종국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의 원인을 제공했다.

전 세계가 경쟁적인 보호무역주의로 대공황과 전쟁의 어려움에 겪게 되자, 이에 대한 반성으로 미국의 주도로 1947년 출범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 하에서 무역의 자유화, 즉 자유무역주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995년 1월부터는 WTO(세계무역기구)가 무역 촉진과 더불어 국제무역에서 벌어지는 협력 및 분쟁을 조절하는 등 자유무역주의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각국의 경쟁 우위를 바탕으로 하는 자유무역이 국제 분업을 촉진시키고 무역 증대를 가져오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국제사회는 자유무역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자유무역으로 인해 자국 산업이 피해를 입고 무역 적자가 쌓이는 국가의 경우는 보호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해 나가려는 속성이 강해 항상 충돌의 가능성이 있다. 물론 WTO(세계무역기구) 등 국제무역기구를 통해 국가 간 무역 분쟁을 조절하고는 있지만 뚜렷한 한계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과 같은 패권국가가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해 나가면 국제사회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미국의 산업 보호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는 것에 대해 국제무역기구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중간 무역 갈등이 전면적인 경제 전쟁으로 번지고 있지만 이를 중재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은 전무한 실정이다. 고작 IMF(국제통화기금)가 보고서를 내 “이번 갈등의 가장 큰 피해자(looser)는 미국과 중국의 소비자가 될 것”이라 경고하고 있지만 이미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미국과 중국 당국자의 귀에는 들릴 리 만무하다.

결국 패권국가간의 무역전쟁(혹은 경제전쟁)은 과거의 사례를 참고해 서로가 한발씩 양보하는 수밖에 없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각국의 보복관세로 인해 국제 무역이 위축되자 각국은 ‘경제 블록화’에서 각자의 살 길을 찾아 나섰다. 영국은 ‘파운드 경제권’을 묶어 블록화했으며,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이름하에 군국주의로 나섰다. 또한 해외 식민지 개척이 부진했던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즘이 정권을 장악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가 제2차 세계대전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앞서도 언급한 사실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간 갈등은 이제 무역전쟁을 수준을 넘어서 상대국 산업 기반을 고사시키려는 무자비한 경제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대공황 시대와 비교하며 우려하는 대목이다. 경제사에서 1930년대 대공황 시대는 다시는 떠올리기 싫을 만큼 끔찍한 사건이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또 다시 세계공황을 경험하게 될지 모른다. 더 비극적인 것은 경제 전쟁이 심화되면서 군사적인 충돌로까지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어느 기자와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었다. 제3차 세계대전이 발생한다면 어떤 무기가 사용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제3차는 잘 모르겠지만 제4차 세계대전에서는 몽둥이와 돌멩이가 사용될 것’이라 대답했다. 퇴로가 없는 전면적인 전쟁이 가져올 파국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번진 시대착오적인 미·중 무역 전쟁이 당사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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