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축적’으로 편견 극복…36년 만에 4강 신화
경제·바이오헬스 등 다양한 분야도 축적과 도약 요구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폴 디랙(Paul Adrien Maurice Dirac) 양자역학 연구의 업적으로 1933년 오스트리아 E.슈뢰딩거(Ervin Schrödinger)와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폴 디랙은 ‘양자이론(Quantum Theory)’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물리학의 발전을 되돌아보면, 작은 발걸음이 무수히 축적된 다음 수많은 거대한 도약이 그 위에 중첩된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거대한 도약이란 대개 편견을 극복하는 것이다.”

한국 축구가 또 다시 ‘거대한 도약’을 성취했다. ‘키가 작고 체력이 약한 아시아인은 월드컵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극복하고 U-20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재현한 것이다. 1983년 멕시코 대회에서 박종환 감독의 우리 대표팀이 스코틀랜드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패했지만, 멕시코-호주-우루과이를 차례로 누르고 4강에 진출한지 36년만의 쾌거다. 

2019년 6월9일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폴란드 비엘스코-비아와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네갈과 국제축구연맹(FIFA) U-20월드컵 8강전에서 후반 에이스 이강인과 수비수 이지솔의 연속골, 연장 전반에 터진 조영욱의 추가골을 묶어 전 후반 90분과 연장 전 후반 30분 등 120분의 혈투를 3-3으로 마친 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3-2로 승리하며 4강에 진출했다. U-20월드컵 사상 첫 우승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FIFA U-20월드컵은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으로 2년마다 열리는 20세 이하 청소년 축구대회. 청소년 선수들에겐 체격과 체력이 필수요건이다. 그런데 세네갈 선수들은 체격과 체력이 좋았다. 그래서 모두가 세네갈 승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스리백의 이재익 김현우 이지솔, 좌우 윙백의 최준 황태현, 미드필드의 정호진 박태준, 공격진의 오세훈 전세진 이강인, 교체 투입된 조영욱 등은 체격과 체력이 우세한 세네갈 선수들에게 전혀 주눅이 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당당함 그 자체였다. 마침내 우리 선수들은 ‘체격과 체력의 열세’라는 편견을 극복하고, ‘거대한 도약’을 이룬 것이다. 선제골을 내주고 동점골, 다시 뒤지다가 추격 골을 넣은 뒤 연장에서 선제골, 이후 ‘승부차기 3-2’로 승리. 한국 축구의 투혼이 빛난 한판이었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숨 막히는 드라마였다. 

한국 대표팀은 1979년 일본에서 개최된 제2회 U-20월드컵 때 처음 본선에 진출했다. 4년 만에 ‘4강 신화’를 창조했고, 40년 만에 ‘4강 신화’를 재현했다. “작은 발걸음이 무수히 축적된 다음 수많은 거대한 도약이 그 위에 중첩된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폴 디랙의 말이 축구에서도 입증된 셈이다. 

이번 우리 대표팀의 ‘U-20월드컵 4강 진출’은 여러 가지로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40년의 ‘축적’, ‘체격 체력 열세’라는 편견 극복의 ‘거대한 도약 중첩(두 번의 4강 진출)’이 우선 우리 경제에 던지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무수한 축적과 거대한 도약이라는 폴 디랙의 ‘양자이론’은 경제와 바이오헬스 등 다양한 분야에도 적용된다. 

한국은행의 지난 5일 발표에 따르면, 4월 경상수지가 6억6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자 7년 만에 적자 전환한 것을 두고 말이 많다. ‘경제 폭망’이란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제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경상수지 적자의 가장 큰 요인은 반도체 부진 때문. 반도체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지난해 평균 20.9%이었다. 그런데 4월 12.7%로 떨어졌다. 비록 자동차가 5.8%, 선박이 53.6%, 일반기계가 0.3%로 선전했으나 반도체가 –13.5%를 기록한 반도체 수출 감소폭을 만회하지 못해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게다가 미 중 무역전쟁과 글로벌 경기악화로 반도체 시장이 회복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아 반도체 의존도를 줄이지 않는 한 경상수지 적자는 당분간 지속될 수도 있다.

그래서 ‘축적의 시간’과 ‘거대한 도약의 중첩’이 우리 경제에 절실하게 요구된다. 무엇보다 정부가 중점 육성 산업으로 선정한 시스템 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 분야에 해당된다. 이들 산업을 우리 경제의 신성장동력 3대 기둥으로 만들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하지만 당장에 그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고 숙성시켜야 비로소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벤치마킹과 속성재배를 우선했던 종래의 경제 마인드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가령, 조동규 성균관대 약학과 교수 연구팀의 바이오헬스 분야 연구결과가 성과를 내는 데도 13년의 ‘축적의 시간’이 있었고, ‘국내연구 한계’라는 편견을 극복했다. 그는 순천고-경희대-광주과학기술원 출신으로 순수 ‘국산(國産)’이다. 

최근 조동규 교수의 연구팀(16명)은 알츠하이머병(치매)의 원인 인자인 아밀로이드베타(Amyloid-beta)를 생성하는 효소를 억제하는 단백질과 이를 조절하는 천연물의 작용기전(機轉·작용원리)을 규명함으로써 알츠하이머 치매의 예방과 치료에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6월3일 세계적 과학 권위지인 미국립과학원회보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 USA)에 게재된 것. 알츠하이머병은 전체 치매의 50~60%를 차지하는 노인성 치매에서 가장 흔한 질환이다.

아밀로이드베타는 BACE1(베이스1)이라는 효소가 세포막에 존재하는 APP라는 단백질을 자르면서 생성되며, BACE1-AS는 BACE1 mRNA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해 BACE1 발현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연구팀은 브로콜리에 다량 함유돼 있는 설포라판(sulforaphane)이라는 성분이 NRF2(엔알에프2)라는 전사인자를 활성화시킴으로써 BACE1과 BACE1-AS의 발현을 직접 억제한다는 새로운 기전을 규명한 것이다. 

조 교수가 치매 예방 치료제 개발에 나선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6년 5월 치매의 원인인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을 생성하는 감마 세크리테이즈가 세포 내 ‘노치’ 유전자를 활성화함으로써 뇌졸중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를 영국의 의학저널인 ‘네이처 메디슨(Nature Digital Medicine)’에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의 나이 약관 33세 때의 일이다. 

그리고 13년간 ‘축적의 시간’을 거쳐 2019년 우리가 자주 먹는 식품 브로콜리 성분에서 알츠하이머 예방·치료 효과를 찾아낸 것이다. 우리 대표팀의 ‘U-20월드컵 4강’과 조동규 교수의 ‘치매 예방 치료 연구결과’는 한국의 저력이요 자랑이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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