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 슬기롭게 헤쳐 나아가야
4차산업혁명 대비 산업구조도 개편해야

한국은행은 지난 4일 ‘2019년 1분기 국민소득’을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455조810억원으로 집계됐다. 실질 GDP 증가율은 전기 대비 -0.4%를 기록했다. 이는 금융위기가 덮친 2008년 4분기(-3.2%) 이후 최저 수준이다. 또한 1인당 국민소득의 지표로 이용되는 명목 국민총소득(GNI) 증가율도 전기 대비 -1.4%를 나타내 거시 경제 지표가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분기 성장률이 -0.4%를 기록한 것에 대해 한국은행 관계자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하방 리스크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올해 전망치인 2.5% 달성 여부는 다음 달 전망까지는 지켜 볼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그런데 한국은행 발표 자료를 두고 보수와 진보 진영의 언론과 학자들이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먼저 보수 진영에서는 현 거시 지표 악화가 소득주도성장의 정책적인 한계를 그대로 노출한 결과로 받아들인다.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잡겠다는 목표를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현 정부의 목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들은 정부의 경제·통화 정책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보수 성향의 학자들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과 유럽의 양적확대의 예를 들면서 한국은행이 대폭적인 금리인하를 통해 통화량을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시행 초기 정부에서 말한 것처럼 내수를 진작시켜 성장 목표를 달성하는데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마이너스 성장의 주요인은 아니다. 현 상황은 대외적으로 미·중 무역전쟁으로 수출이 부진하고, 대내적으로 투자가 줄어들면서 제조업이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외생 변수인 미·중 무역전쟁은 논외로 한다고 해도,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인해 제조업의 위기가 왔다는 증거는 부족하다. 제조업의 위기는 오래전부터 꾸준하게 진행된 현상으로 산업구조 재편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못한데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맞다.

또한 경기 부양책으로 기준금리 인하 주장은 이전 정부에서 발생한 경제적 모순을 되돌아보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계속 내려가는 동안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자리 잡았다.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또다시 금리 인하라는 단기 처방전을 꺼내든다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하다.

반면 진보성향의 건국대 최배근 교수는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경제는 명백한 수치로 측정되고 발표되지만 언론이 이를 왜곡하고, 정치권은 정략적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 교수는 통계청의 ‘2019년 1/4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결과’ 자료를 인용하면서 “2016년 박근혜 정부 때 전체 가계의 60%에서 명목소득이 줄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50%, 하반기에는 40%, 올 상반기에는 20%가 줄었다”면서 소득주도성장으로 중산층 명목소득 감소가 차츰 해소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최 교수는 미중 무역전쟁과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으로 세계교역이 구조적으로 감소하면서 우리 경제도 2015년 수준으로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가계소비 덕분에 그나마 이 정도로 버티고 있다면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 교수는 통계 자료에 근거한 사실(팩트)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 반대론자들의 왜곡된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드러난 통계적인 수치와 달리 서민, 자영업자와 영세 중소기업인이 체감하는 경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다. 

최근 필자가 회원으로 있는 온라인 친목 모임에서 한 회원이 현재 우리 경제 상황에 대해 "측정할 수 있는 수학 실력은 조금 향상되었는데 측정 못하는 국어 실력은 올랐는지 떨어졌는지(아마 떨어졌을 듯) 모른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이것이 아마 일반 서민들이 느끼는 우리 경제의 현 주소일 것이다.

경제는 일종의 심리다. 팩트를 왜곡해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우리 경제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통계적인 수치에 근거해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도 경제적 약자에게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다행이 보수와 진보진영 모두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고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 우리 경제를 가로막고 있는 큰 장애물은 미·중 무역전쟁과 같은 대외적인 소용돌이고, 내부적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산업구조의 재편과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대비하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지엽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