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시스템 둘러싸고 ‘혈맹’ 미국-터키, ‘숙적’ 터키-러시아 관계 변화

1962년 7월,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부품을 수송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곧이어 10월22일에는 소련의 핵미사일이 쿠바의 발사 기지에 배치된 사실이 확인됐다.

미국은 이 미사일이 자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보고 즉각 조치에 들어갔다. 소련이 쿠바에 배치된 미사일을 회수해가지 않으면 해상 봉쇄 조치에 이어 쿠바를 침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련과 쿠바는 비상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전 세계는 핵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며 숨죽인 채 이 사태를 지켜봤다. 사태는 10월26일 소련이 미국의 압박에 못이긴 듯,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으면 미사일을 회수할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서며 막을 내렸다.

당시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이 사태를 통해 용기와 신념을 지닌 강단 있는 지도자로 우뚝 섰고,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는 미국의 압박에 맥없이 물러선 나약한 지도자로 이미지가 고착화됐다. 흐루시초프는 2년 뒤 서기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여기까지가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내막을 더 들여다보면 소련의 일방적인 패배가 아니었다. 같은 해 초 소련을 겨냥해 미국이 터키에 배치했던 주피터 핵미사일도 같이 철수된 것이다.

어떤 점에서 소련의 쿠바 미사일 배치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터키에 배치됐던 미국 미사일에 대한 상응조치였고, 결국 흐루시초프는 쿠바 미사일 회수 조건으로 미국도 터키에 배치된 미사일을 철수시키라고 요구해 이를 관철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터키에 배치됐던 미국 미사일의 철수 사실에 대해서는 당시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흐루시초프는 무모하게 미국을 자극했다가 아무 것도 얻은 것 없이 물러난 무능한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지만, 실제로는 전임자 스탈린과 달리 자본주의 진영과의 평화공존 정책을 실시한 변화의 아이콘이었다. 그가 12년 동안 누려오던 서기장직을 내려놓은 이유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의 나약한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70세라는 노령의 나이와 건강 때문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흐루시초프와 관련된 이면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소련을 겨냥한 핵미사일을 터키에 배치할 만큼 미국과 터키 양국이 군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터키와 러시아의 오랜 앙숙 관계와 지정학적 이유 때문이었다. 터키와 러시아는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전쟁을 벌인 숙적이었다. 세력을 넓히기 위해 부동항이 필요했던 러시아는 터키의 전신 오스만제국 시절부터 이스탄불을 통해 지중해로 진출하기 위해 크림전쟁을 포함해 10여 차례의 전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오스만은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등을 러시아에 빼앗기기도 했다.

20세기 들어서도 러시아의 남하 정책은 계속됐고, 터키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1951년 유럽과 미국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통해 미국과 친밀해졌다. 터키의 나토 가입은 1950년 발발한 한국 전쟁 당시 터키가 미국의 뜻에 따라 유엔의 일원으로 많은 병력을 파견한 데 따른 보상책이기도 했다. 이처럼 터키에게 미국은 혈맹이고 러시아는 오랜 숙적으로 규정돼왔지만, 최근 들어 그 관계에 변화의 기미가 드러나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 불씨 또한 미사일이다. 터키가 지난해 12월 러시아산 방공시스템인 지대공 미사일 S-400 구매 계약을 체결한 이후, 미국과 수개월째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터키는 지난 2017년 미국에서 방공시스템 패트리엇을 구매하려고 시도했지만 불발되자 S-400 도입을 결정했다.

문제는 이에 앞서 터키가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인 F-35도 구매, 인도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 사태가 터졌다는 점이다. 미국은 F-35와 S-400이 동시에 운용될 경우 터키의 S-400 레이더가 F-35 위치를 추적하는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F-35 스텔스 전투기의 인도를 중단했고, F-35 조종 훈련을 받던 터키 조종사 26명을 훈련 프로그램에서 제외한 데 이어 추가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경고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터키는 미국이 패트리엇 판매를 거부해 대체 판매자를 찾은 것이라고 맞서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6월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때 미-터키 정상회담에서 S-400 도입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는데, 결말이 어떻게 나든 미국-터키-러시아의 관계는 이전과 달라질 게 분명하다.

터키가 변심(?)한 중심에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있다. 의원내각제 하에서 3차례나 총리를 역임한 그는 헌법상 더 이상 총리로서 권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대통령제로 헌법을 바꿔 17년 동안 통치권을 이어오고 있는 강인한 인물이다. 이 점에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2016년 7월에 발생한 터키 군부의 쿠데타 진압 과정에서 미국에 서운한 마음을 갖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쿠데타의 배후로 지명된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을 소환하라는 요구를 미국이 거부한 이후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다. 이번 러시아 미사일 도입 건도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군사적 라이벌 러시아와 밀당을 하는 오랜 혈맹의 변심이 괘씸하지만 제재할 방안이 마땅치 않을 것이다. 터키가 한때 동유럽과 이집트, 중동 일대를 지배하던 오스만제국의 후계 국가로서 지역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정학적 역학 구도를 활용할 줄 아는 나라이기도 하다. 따라서 터키를 필요 이상으로 자극할 경우 그 지역 내에서 미국의 이익이 상당 부분 훼손될 우려가 있다.

미국이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지만, 이 사태는 국제무대에서 우방과 적의 관계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변화 과정에서 어떤 행위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과연 초강대국 미국이 지정학적 역학 구도를 활용해 대응하는 지역 강국과의 분쟁에서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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