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 투쟁에 주안점을 둔 채 국회정상화 뒷전
“문제 해결책은 헌법과 국회 안에서 찾아야”

1965년 6월, 브뤼셀에 본부를 둔 유럽경제공동체(EEC) 집행위원회는 EEC 예산에 대한 실질적 권한 확대는 물론 EEC의 독자 예산권과 공동농업 관련 지출에 대한 통제권을 갖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프랑스가 반발하고 나섰다. 자국의 예산 통제권을 EEC에 양보할 생각이 없던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집행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그에 대한 항의 표시로 EEC 각료이사회에서 자국의 대표단을 철수시켜 위기감을 조성했다. 이때 프랑스 대표단의 의자가 비어있었다고 해서 이를 ‘빈 의자 위기(Empty Chair Crisis)’라고 일컫는다. 

EEC는 1957년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와 베네룩스 3국이 참가한 공동체로, 오늘날 유럽연합(EU)의 모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1·2차 세계대전 이후 회원국의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탄생한 이 기구는 초반에는 회원국들이 경제 발전을 이루며 순항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회원국들 간에 의견대립이 심화되더니 결국 1965년 6월 문제가 터지고 만 것이었다. 

1960년대 중반에는 EEC의 유럽의회가 입법권한을 갖지 못하고, 현재와 같이 집행위원회의 권한이 확고하지 못한 상태였다. 따라서 프랑스 대표의 각료이사회 불참은 결과적으로 유럽공동체 차원의 입법과 정책결정 과정을 완전히 정지시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로 인해 EEC가 해체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사실 EEC는 유럽 통합을 염두에 두고 창설된 공동체였지만, 초기부터 프랑스와 나머지 5개국의 의견 대립이 심각했다. 드골은 초국가적인 유럽통합이 아닌 국가중심의 통합을 주장했다. 1960년 드골은 정치연합을 제안하고 독자적 초안을 제출했다. 다른 5개 회원국은 정치연합에는 동의했지만 드골과 달리 여전히 초국가적 유럽 통합을 지향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프랑스와 나머지 5개국은 정면으로 대립했다. ‘빈 의자 위기’는 이 같은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이에 5개국은 프랑스를 제외한 채 모든 것을 처리하거나 프랑스에 양보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프랑스 역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EEC에서 탈퇴하거나 뜻을 굽히거나, 한가지의 선택만 있었다.

문제는 프랑스가 EEC에서 탈퇴할 경우 나머지 5개국이 영국을 가입시킬 것이고, 그렇게 될 경우 프랑스의 경제는 침체에 빠지고 영향력도 급속히 약화될 게 뻔했다. 영국은 이미 1961년 EEC 가입을 시도하다 “영국은 미국이 유럽에 심어놓으려고 하는 트로이 목마와 같은 존재”라고 주장한 드골의 반대로 가입이 무산됐다. 이어 영국은 1969년에도 드골의 거부로 EEC 가입이 무산됐다가 드골이 사망한 지 3년 뒤인 1973년 세번째 도전 끝에 EEC 가입에 성공했다.

결국 프랑스가 먼저 손을 내밀고 타협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는 7개월 만인 1966년 1월 룩셈부르크에서 5개국 대표들과 회담을 열고 이견 조정을 통해 문제를 봉합했다. 집행위원회의 초국가적 권한을 제한하고 회원국들의 비토권을 인정한 만장일치 표결을 상설화했다. 서로 조금씩 양보한 이 합의를 룩셈부르크 타협(Luxembourg Compromise)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EEC는 정상화 됐지만 프랑스의 ‘빈 의자’ 전략은 초국가적인 공동체를 추진해오던 유럽 통합주의자들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줘 유럽 통합을 20년 이상 지체시켰다는 지적을 받는다.

프랑스 대통령 드골이 촉발시킨 이른바 ‘빈 의자 위기’는 최근 우리 정치권의 위기 상황과 묘하게 닮은 데가 있다. 장외 투쟁에 주안점을 둔 채 국회의 입법과 정책결정 과정을 완전히 정지시키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국회정상화 비협조 전략을 연상케 한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최근 6월 임시국회를 소집해 20일부터 임시국회를 연다고 공고했지만, 자한당은 패스트 트랙 취소와 경제청문회 등을 요구하며 모든 의사일정 합의를 부정하고 있다. 한국당의 협조 없이는 모든 일정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워 임시국회만 소집해놓고 허송세월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자한당은 국세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와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는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청문회 실시 합의와 국회 정상화 합의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국회 정상화를 위한 전제로 경제청문회 개최 등이 해결돼야 한다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가 촉발시킨 EEC의 ‘빈 의자 위기’와 국회 의석을 비워두는 바람에 자한당이 촉발시킨 위기는 그 내용과 결과도 비슷하다. 나머지 구성원들과 다른 의견을 굽히지 않고, 그 의견이 자신들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고, 위기를 조장하고 있고, 그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과연 자한당의 ‘빈 의자 전략’은 성공할 것인가. 성공 여부를 떠나 그들이 해야 할 행동에 대해서는 1965년 EEC의 여타 5개국이 답을 내놓고 있다. "문제의 해결책은 조약(헌법)과 기구(국회) 안에서 찾아야 한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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