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첨예하게 이념 대결 벌인 독일도 통일
‘냉전시대 유산’ 집착한다면 국민 통합에도 방해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미국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개입했다. 7월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북한의 남침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유엔군을 파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이 각자의 이념을 내세워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냉전 시대이긴 했지만, 앞서 1950년 1월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이 미국의 새로운 방위선을 한국과 타이완을 제외한 알류샨 제도, 일본의 오키나와, 류큐 제도, 그리고 필리핀을 잇는 선을 따라 정한다고 밝혔기 때문에 미국의 신속한 개입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유엔 설립 후 첫 번째 활동이기도 했다.

사실 냉전의 최전선은 한반도가 아니라 유럽이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영국, 프랑스, 독일이 가장 중요했고, 그 다음이 일본이었다. 한국은 마지막이었다. 이미 소련이 동유럽을 상당 부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부유럽과 서유럽마저 장악할 경우 미국은 이념 대결에서 패배할 위험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미국은 서유럽을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단합시켜 소련에 맞설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서유럽 국가들의 경제 회복이 더디다는 데 있었다. 궁핍한 이들 국가에 공산주의가 침투할까봐 두려웠던 미국은 1947년부터 경제원조계획인 마셜플랜을 실시했는데, 경제적으로 가장 위험한 국가는 2차 대전 패전국 독일이었다.

비록 2차 대전의 적수였지만 독일을 경제적, 정치적으로 방치할 경우 또 다른 화근이 될 게 분명했다. 영국, 프랑스 등과 함께 독일의 서쪽 절반을 점령하고 있던 미국은 독일 전체를 소련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1949년 5월 독일연방공화국, 즉 서독을 건국했다.

소련 입장에서도 최전선인 독일이 가장 중요했다. 결국 독일 동쪽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소련도 1949년 말 독일민주주의공화국, 즉 동독을 건국했다. 서독과 동독은 어느 쪽 사회와 정부가 독일인들에게 더 많은 물질적, 정신적, 민족적 만족을 줄 것인지를 실험하는 모델과도 같았다. 이념 대결에서의 승리를 위해 양측 모두 전력을 다해 서독과 동독을 지원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동안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한국에서 발발한 전쟁에 미국이 신속히 대응한 이유는 한국에 대한 공산주의 세력의 공격을 유럽으로 공격을 확산시키려는 전조로 보았기 때문이다. 극동에서 공산주의를 막지 못하면 유럽마저 공산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던 것이다.

사실 한국은 독일보다도 더 아픈 냉전의 희생양이었지만 유럽 우선 전략에 따라 애치슨라인에서 제외됐을 만큼 냉전의 한복판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미국은 비록 유럽으로 공산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전쟁에 뛰어들었지만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적과 치르는 잘못된 전쟁’이라고 생각해 오래 끌고 갈 생각은 없었다.

3년을 끈 전쟁은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군사 정전 협정 체결로 마무리됐다. 한국의 이승만 정부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장기화를 원치 않던 미국과 소련의 이해가 맞물려 체결된 협정이었다. 양측은 ‘종전’도 아닌 ‘정전’으로 서둘러 마무리했다. 그렇게 판문점은 냉전과 분단의 상징으로 남았다.

이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냉전이 끝나고,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하고, 소련이 해체됐다.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을 들먹이지 않아도 냉전은 자본주의 진영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2019년 6월30일.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 한복판에 나타나 한국과 북한의 지도자를 만났다. 한국전쟁 때 미국 대통령의 임무는 북한을 물리치는 것이었다면, 지금 미국 대통령은 북한과의 종전, 즉 화해하는 것을 임무로 여기고 있다.

그가 취임한 이후 한국 대통령과는 10여 차례, 북한 지도자와는 세 차례나 만났다. 비록 그가 추진하고 있는 북미 대화의 목적이 북한의 비핵화에 방점이 찍혀 있지만, 이는 한국전쟁을 진정하게 마무리할 발판이 마련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이로 인해 그동안 한국의 여러 대통령들이 시도했다가 미국이 움직이지 않아 불발됐던 남․북․미의 화합이 성사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우리 자신만의 힘보다 미국이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게 아쉽지만, 어차피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의 분쟁은 분쟁 당사자들끼리 해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판문점은 남․북․미 화해의 아이콘이 됐다.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의 화해를 임무로 생각하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당연히 통일의 기반을 닦는 일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념 대결 마인드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보다 더 첨예하게 이념 대결을 벌였던 독일이 일찌감치 통일된 마당에, 이념 대결에서 자본주의 진영이 오래전에 승리한 마당에, 아직도 냉전 시대의 유산인 이념 대결에 집착한다면 통일은 물론, 그 전 단계인 화합에도 방해가 될 것이다.

아무쪼록 냉전 시대의 마인드에서 벗어나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라는 오명을 씻어낼 더 없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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