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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완의 세계窓] ‘엠스 전보 사건’과 가짜 뉴스
비스마르크 가짜 뉴스로 독일 통일 이루지만 결국 1·2차대전서 패망
가짜 뉴스 어느 한편의 이익이나 손해가 아닌 비극적 결말 가능성 높아
2019년 07월 12일 (금) 12:09:09 곽영완 webmaster@smedaily.co.kr

가짜 뉴스가 심각한 수준이다. 정치 분야는 물론, 경제․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짜뉴스가 판을 친다. 심지어 일본의 유치하고 비열한 일방적인 경제 제재 조치에 대해서도 일본보다는 우리 정부가 잘못했다는 식의 가짜 뉴스들이 범람하고 있다.

정치권도 이를 확산시키는 데 가세하고 있다. 야당 대표와 대변인까지 나서 가짜 뉴스가 마치 사실인 양 지적하며 이를 확산시키고 있다. 야당으로서 거짓 정보를 사실처럼 포장해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정파적 의도를 지닐 수는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정파적 이익에 치중하고 싶더라도 이 문제만큼은 가짜 뉴스 확산보다 대응책을 제시하는 게 우선 순위 아닐까.

가짜 뉴스의 해악은 어느 한편의 이익이나 손해로 끝나는 게 아니다. 이를 듣는 사람들은 물론, 유포자에게도 비극적인 결말이 기다릴 가능성이 크다.

이솝 우화의 양치기 소년은 거짓말로 마을 사람들을 속이다 결국 늑대에게 양들을 잃었다. 소년에게 자신들의 양을 돌보게 했다 양을 잃은 마을 사람들은 소년을 감옥으로 보냈다. 모두에게 비극이었다. 우화 속에 담긴 함축적인 의미를 소홀히 하면 안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결정적이고 대표적인 가짜 뉴스의 원조격은 비스마르크가 조작한 ‘엠스 전보사건’일 것이다. 이 가짜 뉴스의 효과는 무려 독일 통일이라는 사건으로 연결되지만, 결국에는 독일의 패망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여느 가짜 뉴스의 해악과 똑같은 비극적인 결말을 보인다.

사건은 1868년 스페인의 이사벨 2세가 군의 쿠데타로 쫓겨나 왕위가 비자 1870년 스페인 의회가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의 친척인 레오폴트 공에게 왕위를 제안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여러 국가로 분열돼 있던 독일연방 내에서 독일의 통일을 주도해나가며 힘을 키우던 프로이센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프랑스 국왕 나폴레옹 3세는 만약 레오폴트 공이 스페인 왕위에 오를 경우 프로이센 출신 왕가가 좌우에서 프랑스를 에워싸는 꼴이 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이를 반대했다.

결국 빌헬름 1세의 권유에 따라 레오폴트 공은 그 해 7월12일 후보에서 물러나겠다고 공표했다. 그런데 다음날 나폴레옹 3세의 대리인인 주 프로이센 프랑스 대사가 빌헬름 1세가 휴가 중이던 엠스로 찾아와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러한 일이 없도록 문서로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빌헬름 1세는 그 요구를 정중히 거절하는 선에서 마무리했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한다.

빌헬름 1세가 보낸 전보를 통해 베를린에서 면담 내용을 전해들은 프로이센 수상 비스마르크가 이를 부정적으로 각색해 제3국인 영국 언론을 통해 공개한 것이다. 그 내용은 ‘다짜고짜 휴가 중인 빌헬름 1세를 찾아온 프랑스 대사의 무례한 요구에 빌헬름 1세도 화가 나서 말도 제대로 안 듣고 쫓아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갔던 정중함은 전혀 없이 서로 상대방을 모욕한 것처럼 비쳐지도록 한 이른바 ‘엠스 전보 사건’이다

비스마르크에게는 프랑스를 자극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독일의 통일을 방해하던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승리함으로써 통일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예상대로 빌헬름 1세가 자신의 대사를 ‘문전박대’했다는 내용에 분노한 나폴레옹 3세는 프로이센에 전쟁을 선포했다.

프랑스는 암암리에 전쟁을 준비하던 비스마르크의 덫에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민족 감정까지 자극하며 그동안 프랑스를 따르던 작은 연방국들까지 한편으로 끌어들인 프로이센은 순식간에 나폴레옹 3세를 포로로 잡아 승리한 뒤 1871년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통일 독일제국의 성립을 선포한다. 가짜 뉴스에 넘어간 프랑스에는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독일 통일만 놓고 보면 엠스 전보 사건은 성공한 가짜뉴스였다. 비스마르크도 일부 역사가들에 의해 독일을 통일시킨 영웅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그건 그 당시에 국한된 해석일 뿐 좀 더 긴 시간을 놓고 분석해보면 결코 도움이 안 되는 통일이었다.

일단 당시에도 독일연방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던 오스트리아를 제외시킨 ‘소통일’이라는 비난이 있었던 데다, 통일 이후 지나친 확장주의를 지향하다 40여년 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는 사변을 겪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이미 수상에서 물러나 실각한 뒤 1898년 사망한 비스마르크가 살아서 전쟁으로 패망한 조국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독일을 통일시킨 걸 자랑스러워했을까.

   
 

역사를 해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비스마르크가 조작한 가짜 뉴스로 인해 독일은 일시적으로 통일이라는 이득을 봤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패망이라는 비극을 맞았다는 해석도 가능한데, 실제로 후자가 더 설득력이 있다.

이후에도 독일은 똑같은 확장주의를 추구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한 차례 더 패전을 하고 분단까지 됐으니, 가짜 뉴스에 바탕을 둔 비스마르크의 통일이 얼마나 덧없는 일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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