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공격본능’ 동조 말고 국가의 에너지 하나로 결집시켜야

국제정치는 주권국가 간에 전개된 ‘힘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다. 그래서 냉혹하다.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다. 국가이익이 충돌하면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난다. 따라서 국제정치에서는 내 나라와 다른 나라, 또는 내 나라의 이익과 다른 나라의 이익 간의 대립과 갈등이 본연적 현상일 수밖에 없다. 

최근 한일관계가 바로 국제정치의 냉혹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즉, 일본은 과거 ‘진주만 공습’을 연상시키는 ‘경제공습’ 행태를 재연하고 있다. 우방이 아닌 적국을 대하듯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12일 한 일 전략물자 수출통제 담당 실무자 간 양자협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 시 통관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안보상 우호 국가)에서 제외하겠단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화이트리스트 제외’는 한국을 안보상 우방국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당장 1112개 품목이 일본 수출규제 영향권에 들게 된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미일 3각 동맹’을 축으로 하는 동북아 안보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일본 중심의 새 판을 짜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처음 꺼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와 관련된 일부 핵심품목에 대한 ‘핀셋’ 수출 규제 카드는 애드벌룬에 불과했다. 그러나 내달 꺼내게 되는 ‘화이트리스트 제외 카드’는 사실상 ‘경제전쟁 선전포고’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일본의 진짜 노림수는 뭔가. ‘위안부 문제 합의 파기’과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반발한 경제보복인가. 참의원 선거용 정치적 액션인가. 한일 간 경제격차 축소와 주요 산업에서 한국의 경쟁국 부상에 위기를 느낀 일본의 ‘한국경제 때리기’인가. 아베 신조 총리가 자신의 항구적 정치기반 강화를 위한 ‘외곽 때리기’인가. 이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일본이 한국경제에 ‘공습’을 가하고 있는 것은 ‘재팬 패싱(Japan Passing)’에 대한 반발 성격이 강하다. 일본은 지난 6월30일의 ‘남북미 판문점 3자회동’에서 배제됨으로써 ‘재팬 패싱’이 현실화되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일본에선 ‘재팬 패싱’을 ‘카야노 소토(蚊帳の外)’라고 한다. ‘모기장 바깥’이란 뜻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모기장 안에 있어서 보호를 받는데 자신만 모기장 밖에 있어서 모기에 물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핵문제에서 6자회담국 가운데 일본만이 배제됨으로써 북핵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 노동1호(사정거리 1000㎞)를 일본 상공으로 발사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도 상상할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일본의 처지다.   

일본은 ‘재팬 패싱’이 문재인 정부 때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가 자신들을 배제하고 동북아 안보질서를 재편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북핵문제에서 외톨이가 된 일본이 ‘판문점 3자회동’ 직후 ‘경제공습’을 감행했고, ‘화이트리스트 제외카드’를 꺼낸 것이 바로 이런 의구심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일본의 ‘경제공습’에는 ‘재팬 패싱’을 차단하고 일본 중심의 동북아시아 안보질서를 재편하겠다는 노림수가 담겨 있다고 분석된다. 

일본은 또한 ‘경제공습’을 감행하면서 한국의 분열도 계산에 넣었다. 한국은 2020년 4월15일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이 결코 문재인 정부에 협조하지 않을 것으로 계산한 것이다. 일본은 과거 임진왜란과 조선병탄도 한국의 내부 분열을 악용해 성사시켰다는 역사적 사례를 이번에도 적용하려고 한 것이다. 

물론 오늘의 사태에는 문재인 정부도 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야당이 일본의 ‘경제공습’이라는 국가위기 상황에서 정부만을 공격하는 것은 자칫 일본의 술수에 말려든 꼴이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의 회담을 거부해온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5일 “대승적 차원에서 어떤 회담이라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잘한 일이다. 황 대표는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인한) 위기 상황에 정치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은 그 자체로 국민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며 “실질적 논의가 가능하다면, 우리 당은 대승적 차원에서 어떤 회담이라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국가 간 갈등원인을 분석하는 이론 가운데 ‘공격본능이론’이 있다. 이는 “동물이나 인간이 동종의 대상에 대해 싸우려는 본능을 가졌다”고 주장한 오스트리아 동물학자 로렌츠(Konrad Zacharias Lorenz)의 이론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공격본능(Aggression)은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본능적 행위”로 요약된다. 그런데 일본의 ‘경제공습’은 이러한 ‘공격본능이론’에 부합한다. 일본 봉건시대 무사였던 사무라이(侍)의 공격본능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정치DNA에는 사무라이의 ‘공격본능’이 있는 셈이다.

한국당이 아베의 ‘공격본능’에 동조하지 않은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국가위기 상황에선 온 국민이 하나로 에너지를 결집시켜야 한다.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돼야 한다. 책임공방을 벌일 때가 아니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평화를 지키는 것도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유네스코(UNESCO) 헌장 서문을 기억해야 한다. ‘일심(一心)’이 평화(平和)를 지킨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