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은 각국 경제에 이득…일본의 보복조치는 세계 IT산업에 치명타

현재 세계 무역의 큰 흐름은 자유무역주의다. 자유무역주의는 국가가 무역에 간섭하지 않고 각국이 비교 생산비 원리를 기초로 자유롭게 무역을 한다는 것이다. 1947년에 맺은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에서부터 시작해 1995년 출범한 WTO(세계무역기구) 체제에 이르기까지 세계 무역의 자유화 의지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자유무역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확립한 대표적인 학자는 18세기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르도(David Ricardo)다. 리카르도는 그의 저서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서 비교우위론을 제시하면서 자유무역이 유리하다는 점을 알렸다. 그는 영국과 포르투갈의 직물과 포도주 생산 비용의 예를 통해 모든 산업에서 열위에 있는 국가라도 자유 무역을 하게 되면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교우위론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각국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산업에 집중하고 다른 국가와 무역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게 유리하다는 이론으로, 두 나라 중에서 특정한 재화 생산의 기회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은 나라가 비교우위를 지닌 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은 영국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포도주와 직물을 생산할 수 있어 이론상 절대 우위에 있는 포르투갈이 두 제품 모두 영국으로 수출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포르투갈이 비교우위에 있는 포도주 생산에 특화하고, 영국 또한 상대적으로 비교우위에 있는 직물 생산에 특화해 무역으로 교환한다면 두 나라 모두에게 경제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은 지금까지도 유효한 이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참가하는 나라의 국부를 증진하고 세계 경제 전체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부작용도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각국은 하나의 산업에 집중해야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산업에 비교우위가 있는 선진국에 비해 후진국은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면 선진국과 후진국의 관계가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 즉, 강대국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논리(이데올로기)로 악용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의 맹점은 선진국과 후진국 간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고착시키는 데 있다는 점이 주로 부각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비교우위론의 새로운 부작용이 드러났다.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반도체 제조 등의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한 것은 비교우위론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 자유무역 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이번에 발표된 포토레지스트(Photoresist), 불산 수소(Hydrogen Fluoride·HF), 폴리이미드 (Polyimide·PI)는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품목들이다. 이들 제품의 일본 수입 비중은 2018년 기준으로 포토레지스트 93.2%, 폴리이미드 필름 84.5%, 불산 41.9% 순으로 일본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들 품목들은 중장기적으로 일정 부분 대체가 가능하나 포토레지스트의 경우는 일본 기업의 대체가 어렵다고 한다. 더욱이 대체 가능한 경우에도 반도체 산업 특성상 생산 시기를 놓치게 되면 우리나라의 반도체 등 IT 산업은 국제경쟁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부품소재 산업을 제대로 육성을 하지 못해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말로만 부품소재 산업의 자립을 외친 정부의 탓이 크다. 그리고 대기업도 중소기업과 바람직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일본이 비교우위에 있는 부품소재를 수입해 우리나라가 완제품을 생산하는 국제 분업 관계 속에서 기업들은 효율성을 제고하고 국제 교역을 활성화를 해왔다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이번 일본의 보복조치는 한·일간 다툼에 그치지 않는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양쪽 모두 치명상을 입게 될 뿐만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차질을 빚어 종국적으로 세계 IT 산업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국제무역 질서에 ‘검은 손’을 내밀어 혼란을 가중시키는 꼴이다. 한·일간 외교적 갈등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조화롭게 돌아가고 있는 국제 분업 관계와 글로벌 공급망을 해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또 다시 일본이 전범(戰犯) 국가의 수렁으로 빠지는 길이나 마찬가지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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