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분열 유발함으로써 내년 대선 때 백인 지지 얻으려는 행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아닌 남북전쟁 이전으로 몰고 갈 수도

1783년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신생국 미국은 그야말로 보잘것없는 나라였다. 주변은 여전히 영국을 포함한 유럽 강국들의 식민지로 둘러싸여 언제라도 과거처럼 식민지로 되돌아갈 수 있었고, 국내적으로도 변변한 산업은 없는 초라한 나라였다.  

그나마 미국이 건국 초기의 초라함을 벗고 점차 나아질 수 있었던 발판은 값싸고 질 좋은 자원들이었다. 그 자원 중에 하나가 아프리카에서 데려올 수 있었던 흑인들의 노동력이었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낮선 땅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미국이 건국하기 이전, 영국의 식민지 시절부터였다. 아메리카는 영국 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노동집약적인 목화 재배 산업이 필요했고, 거기에 투입할 노동력을 싼 값에 아프리카에서 공급했던 것이다.

따라서 초기에 아메리카 땅을 밟은 흑인들은 인간이라기보다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가축과 같은 존재였다.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뒤 각 주의 인구에 따라 부과하는 세금을 계산할 때도 흑인은 5분의 3으로 계산했다. 흑인 5명을 3명으로 계산한 것이다. 당시 이를 지칭하는 용어가 ‘5분의 3 이상의 타인들’이었다. 흑인이 백인과 동등하지 않다는 걸 강조한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인종차별은 그 뿌리가 깊다. 1861년에는 노예제도의 유지냐, 폐지냐를 놓고 남북전쟁까지 발발했다. 노예제도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남부와 노예제도를 폐지하려고 하는 북부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었다.

그런데 남부의 입장에서는 전쟁마저 불사할 정도로 노예가 모든 남부인들에게 필수 노동력이었을까? 노예제도를 폐지한다면 대부분의 남부인들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까? 절대 그렇지 않았다.

당시 남부 지역에서 노예를 보유했던 인구의 비율은 극소수였다. 다시 말해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예를 보유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남부인은 노예제도를 유지하든, 폐지하든 큰 이익이나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많은 남부인들은 목숨을 내걸고 피를 흘리며 북부인들과 싸웠다. 대부분 노예를 보유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노예제도를 유지해도 자신에게는 실질적으로 큰 이익이 없는 이들이 왜 전쟁에 뛰어들어 피를 흘렸을까? 아마도 노예제도 사수에 명운을 건 극히 일부의 부유층과, 그 부를 토대로 지도층을 형성했을 사람들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하나의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이유는 계급의식이었다. 대부분의 평범한 남부의 백인들은 노예인 흑인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만 부유층의 노예로 생활하고 있는 흑인들을 자신들보다 한 단계 낮은 계급으로 인식하며,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노예제도를 폐지하게 되면 흑인들이 자신들과 동등하게 대접을 받는 상황이 될 게 뻔했다. 자신보다 하류 계급이라 여겼던 흑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과 동등한 계급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동안의 상대적인 우월감이 갑자기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변해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여한 것이었다.

다행히 이 같은 백인들의 계급의식과 상관없이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하나의 나라로 통합된 뒤 급성장했다. 미국인들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에이브러햄 링컨을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꼽는 이유도 흑백 통합을 통해 발전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흑백 차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언제부턴가 백인들도 일부를 제외하곤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에 대한 계급의식을 마음속으로만 간직했을 뿐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150여년이 지난 지금 과거의 계급의식을 활용해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지도자가 나타났다. 연일 인종차별 발언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의 행위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인종 분열을 유발함으로써 백인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선에서도 이 같은 전략으로 예상과 달리 대통령에 당선된 만큼 이번에도 같은 전략을 구사하려는 것이다. 마치 링컨의 흔적을 지우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링컨 이후 유지돼온 통합을 해칠 뿐만 아니라 미국의 위상도 그가 주장하는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어다. 오히려 미국의 위상을 남북전쟁 이전의 초라한 상태로 돌려놓을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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