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국제질서 주도권 쥘 수 있는 새로운 경제·외교 정책 절실

“한국과 일본은 과거부터 다퉈왔지만, 현재 한 일 간의 불화는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이익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해결되지 않은 채 방치된 한 일 사이의 긴장은 세계 경제에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과 인도-태평양 정책을 해칠 수 있다. 그런데도 백악관은 이 분쟁을 중재하는 데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속적인 무관심은 큰 실책이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전략은 한 미 일 3국 협력에 달려 있다. 따라서 동맹국의 갈등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셀레스트 에링턴 (Celeste L. Arrington) 조지워싱턴대 교수와 앤드류 여(Andrew Yeo) 미국 가톨릭대 교수가 지난 7월31일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한국과 일본은 잘 지낼 수 없다’는 제목의 논문에서 한 미 일 삼각동맹에 대해 이처럼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은 특히 외교적 분쟁에서 ‘무역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되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 보다 더 큰 위험이라는 것이다. 앞서 뉴욕타임스도 정치와 무역을 연계시키는 전략, ‘통상의 무기화’는 국제 통상 질서에 큰 도전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미국은 그동안 세계 분쟁에서 ‘무역카드’, 즉 경제제재카드를 사용해 왔다. 그럼에도 세계평화라는 명분 때문에 세계 각국이 묵인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의 패권전쟁에서 오직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무역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동의할 수 없는 일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사태’ 때 한국에 대해 ‘무역카드’를 사용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빌미로 ‘무역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외교적 분쟁에서 ‘무역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자유무역체제는 붕괴되고 만다.

무엇보다 일본이 ‘무역카드’를 사용한 것은 적반하장(賊反荷杖)의 경제침략이 아닐 수 없다. 결코 단순한 한 일 간의 무역 전쟁이 아닌 것이다. 일본은 지난 120년 동안 한국과의 무역에서 엄청난 흑자를 이뤘기 때문이다. 무역 흑자에도 불구하고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배제를 단행한 것은 경제침략을 넘어 정치보복이며, ‘제2의 한국병탄’이나 다름없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한 미 일 3국 협력체제는 사실상 붕괴된 셈이다.

에링턴 교수와 여 교수는 한 미 일 3국이 분열하면 중국이 이를 이용해 3국을 분열시킬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의 안보전문 정책 연구기관인 애틀란틱 카운슬(Atlantic Council)도 지난 2일(현지시간) ‘한·일 관계의 교착상태를 풀기 위한 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미국은 (한 일 사이) 장기간 분쟁의 승자가 중국, 북한이 될 것이라는 점을 한국과 일본에 환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자신들도 중국에 대해 ‘무역카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4일 한국을 방문해 중재는커녕 ‘한 미 방위비 분담금’인상을 압박했다고 한다. 앞으로 호르무즈 해협 파병까지 요구할 태세다. 미국은 과연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침략’이 동북아시아 국제질서에 미칠 파장을 생각하고 그런 압박을 가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은 절대로 미국을 제켜 놓고 중국에 기대지 않아야 한다. 전통적인 한 미 일 3국 협력체제를 유지하되 다음과 같이 보다 유연하게 외교적 스탠스를 취하고 국가 대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첫째, ‘한반도 운전자론’을 북한 비핵화에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국제질서를 새롭게 형성하는데도 적용해야 한다. 미국이 한국을 ‘밥’으로 여기는 것이나, 일본과 중국이 한국을 ‘봉’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더 이상 그대로 놔둬선 안 된다. 동북아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업그레이드된 ‘한반도 운전자론’이 절실하다. 작지만 매운 고추 맛을 보여줘야 할 때다. 한 미, 한 일, 한 중, 한 러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할 수 있는 대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대전략이 마련될 때까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는 아껴야 한다. 쉽게 사용하면 안 된다.

둘째, 일본의 경제침략을 계기로 강대국이 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통상의 무기화’가 외교에서 일반적인 현상이 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나, ‘자주국방’-‘자립경제’-‘기술독립’을 확고히 구축할 수 있는 국가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따라서 지난달 31일 출범한 ‘일본수출규제대책 민·관·정 협의회’를 확대-개편해야 한다. 일본수출규제대책은 물론 ‘자주국방-자립경제-기술독립을 위한 민 관 정 협의회’를 구성해 종합적인 대책과 국가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국방 외교 경제 분야의 최고 전략가들로 가칭 ‘국가전략기획위원회’를 만들어 ‘위대한 대한민국’ 설계에 착수해야 한다.

셋째, 국민은 창의(倡義·국난을 당했을 때 나라를 위해 의병을 일으킴)하는 자세로 극일(克日)운동에 나서야 한다. 단순한 불매운동의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사상적-문화적 차원의 극일운동이 필요하다. 국난을 당했을 때 위대한 사상이 나오고 문화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한가하게 해외 휴가에 나설 때가 아니다. 끓어오르는 분노, 분노를 심연(深淵)에 가라앉히고 책을 읽고 또 읽고, 사색하고 또 사색해야 한다. 땀을 흘리면서도 ‘확철대오(廓撤大悟)’를 위한 구도(求道)의 길을 멈춰서는 안 된다. 전 국민이 ‘극일의 일심(一心)’을 이룰 때 대한민국은 위대한 나라로 우뚝 설 것이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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