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수탈로 한때 세계 제패…2차 세계대전 후 영·일 영향력 감소
국가발전 원동력 사라지자 브렉시트, 한국과 경제전쟁 등 위험 선택

한때 세계를 호령하거나 지역을 장악하며 기염을 토하던 동서양의 섬나라 강국들이 약속이나 한 듯 시대착오적인 폐쇄주의 정책으로 글로벌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영국과 일본 이야기다. 이 두 나라를 보면 한때 강대국이었다 해도 자칫하면 글로벌 민폐국이 돼 다른 나라들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된다.

이 두 나라는 섬나라로서의 지리적 강점을 적절히 활용해 강국으로 떠올랐지만 최근 들어 지도자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과정도 드라마틱한 면이 있어 흥미롭다.

섬나라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의 지정학적인 입지는 상당히 다르다. 유럽대륙의 서쪽에 위치한 영국은 고대부터 북유럽과 남유럽을 연결하는 무역로 상에 위치한 탓에 상업상의 이익이 큰 나라였다. 이 때문에 해적의 본거지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외부의 침략도 많이 받았다. 11세기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공작 윌리엄이 쳐들어가 잉글랜드의 왕관을 쓰며 정복왕이 되기 이전에도 이 섬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던 세력은 수없이 많았다.

따라서 정복왕을 포함해 영국의 지배층에게는 어느 시대나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영토를 지키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외부 침략과 관련해 영국 지배층이 가장 눈 여겨 보던 곳이 도버 해협과 인접한 유럽 대륙의 저지대 지역이었다. 오늘날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이 차지하고 있는 저지대 지역은 대륙 세력이 영국으로 침략하는 근거지였기 때문에 영국은 이곳을 통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때문에 저지대 지역과 인접한 프랑스와는 당연히 다툼이 많았지만 상업적인 측면에서 볼 때 영국은 유럽 대륙 국가들과의 무역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외부로 눈길을 돌리지는 않았다. 영국에 앞서 외부로 눈길을 돌려 식민지 개척의 물꼬를 튼 건 포르투갈과 스페인이었다. 영국은 이처럼 수세적인 나라였다.

반면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 바다 건너에 위치한 일본은 고대부터 외부의 침략을 받을만한 ‘매력’이 전혀 없던 나라였다. 대륙이나 한반도의 선진 문명권과 접촉하기에는 바다의 방해가 있어 궁핍한 자급자족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외부 세력이 눈길을 줄만한 것은 없었다. 문명의 혜택도 가장 늦게 받았다. 비록 실패했지만, 13세기 몽고와 고려 연합군이 일본에 대한 정복 전쟁을 벌인 것도 아시아와 동유럽을 석권했던 몽고가 정복 지역을 넓히고자 한 것 이외에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자기들끼리 내부 갈등을 겪던 일본은 이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외부로 눈을 돌렸다. 몽고의 침략이 오히려 시야를 외부로 돌리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었다. 가장 큰 목표는 대륙과 접촉하는 것이었지만, 모든 걸 한반도를 통해야만 얻을 수 있었던 이들은 노략질을 일삼던 끝에 동남아로 발길을 돌렸다. 이곳에서 초기에는 중국 상인들과, 이후에는 점차 동남아를 잠식하던 유럽인들과 접촉하면서 상업을 촉진했다. 이를 기점으로 일본은 공세적인 나라가 됐다. 

이렇듯 다른 길을 걷던 두 나라는 시대가 변하면서 뜻밖의 행운을 거머쥔다. 18세기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유럽 각국의 식민지 쟁탈전이 펼쳐지자 영국은 프로이센 등 일부 대륙 국가들과의 합종연횡 끝에 최종 승자가 돼 전 세계를 호령하는 식민제국이 됐고, 동남아에서 유럽 국가들과 접하며 이들의 식민 정책을 눈여겨 본 일본은 19세기 중반 재빨리 프로이센의 군국주의를 도입해 아시아를 장악했다. 이후 두 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식민지 수탈이었다.

20세기 들어 두 나라는 비슷한 길을 간다. 영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모두 승리를 차지했지만 과거의 영향력을 미국에 빼앗긴 채 지역 강국으로 입지가 좁혀졌고,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에 패한 일본은 한국전쟁을 발판 삼아 경제 강국으로 부활했지만 이를 토대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국수주의에 매몰됐다.

글로벌 시대가 본격 개막된 21세기에 들어서자 두 나라는 시대에 역행하듯 섬나라 특유의 편협함과 폐쇄주의로 무장한 채 공존을 해치는 위험한 선택으로 국제사회에 분란을 초래하고 있다. 영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유럽연합에서의 탈퇴를 이끌어 유럽을 혼동에 빠트리며 스스로 고립됐고, 일본의 지도자들은 한국에 대한 경제 도발을 단행해 무역으로 연결된 전 세계와의 고리를 스스로 자르려 하고 있다.

두 나라 지도자들의 선택은 과거의 영광 탓에 실상 이상으로 고평가된 국력을 감안하지 않고 과거의 식민주의적 망상에 젖어서 한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이는 역으로 국가 발전의 동력이 사라져 정체되거나 하락세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오픈되고 모든 것이 공유되는 글로벌 시대에 이 두 나라 지도자들의 폐쇄적인 선택은 과연 국민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하긴 지도자들의 선택에는 국민의 무지와 지지도 한 몫을 했을 테지만, 아마도 폐쇄적인 사고를 버리지 못하는 한 이들 국가의 민폐는 계속될 것이고 국력 또한 다시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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