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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 박사의 알기 쉬운 경제] 일본의 수출 규제 기술 후진국으로 지름길
일본은 독자 기술보다 서구 히트상품 카피로 히트
기술 개발로 일본제품 얼마든지 따라 잡을 수 있어
2019년 09월 10일 (화) 13:42:29 이원호 webmaster@smedaily.co.kr

최근 들어 국내 정치 이슈로 인해 경제 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일본이 전략 품목의 한국 수출 규제를 발표하면서 시작된 한·일 경제 갈등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면서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다. 경제적 갈등이 주목을 덜 받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완화되거나 해결된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자칫 감정적 대응으로 치달을 뻔했던 양국 간 갈등이 완화된 것은 사실이다.

이낙연 총리가 지난 2일 가와무라 다케오 한일의원연맹 간사장과 만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지소미아 종료 등 양국 현안을 논의하는 등 우리 정부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이 총리는 이 자리에서 원론적이지만 “일본 측이 취한 조치들을 원상회복하면 한국도 지소미아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혀 다양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측도 초기의 강경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소 차분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 4일 일본의 마이니치(每日) 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 발표에 앞서 내부에서는 ‘경고’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는 신중론자들도 다수 있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는 경제산업성의 주장대로 강경한 입장이 발표되었지만, 한·일 경제 갈등이 양국 모두에게 결코 이롭지 않다는 것을 일본 정부 내에서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신중론자들의 주장에 힘이 실릴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흥미로운 뉴스 하나가 눈길을 끌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4일 도쿄 시나가와 인터시티 홀에서 ‘글로벌 파운드리 포럼’을 개최했다는 소식이다. 양국 간 갈등의 진원지인 도쿄에서 삼성전자는 일본의 고객사에게 최첨단 극자외선(EUV)을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일본 정부의 글로벌 자유무역 질서에 역행하는 정책에 대한 부담보다는 일본 고객사들에게 첨단 기술을 소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취지로 포럼을 개최했다고 한다.

삼성전자의 도쿄 포럼은 한국 기업이 일본에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을 소개하는 자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번 도쿄 포럼에는 일본 내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와 협력사 관계자가 대거 참석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주의가 정부의 통제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증거다.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에 대해 수출을 규제한다고 해도 기업은 수익과 미래가 보장되는 쪽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폐쇄 지향’적인 수출 규제를 계속해서 밀어붙인다면, 기업들은 해외의 우수한 고객들과 교류 기회를 점차 잃게 돼 결국에는 기술이 도태되고 말 것이다. 일본의 소재부품 산업이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고 있는 것은 해외 시장에서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서 얻은 결과이다. 그런데 최대 시장 중 하나인 한국을 배제하고 내수로 향한다면 경쟁력 저하는 불가피하다. 더욱이 한국 기업들이 속속 국산화에 성공하고 있어 일본 소재부품 산업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제 평론가 가야 게이치(加谷珪一)는 9월3일자 뉴스위크 일본판에 실린 ‘일본은 이제 기술 후진국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자’라는 칼럼에서 일본은 기술 대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일본인에게는 혁신적인 제품을 발명하는 능력은 없지만, 기존 제품을 개선하는 뛰어난 재능이 있다”면서 “일본 기업은 구미 기업이 히트 상품을 내면 즉시 그것을 흉내 내 더 싼 가격의 제품을 내는 쪽으로 능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지금 일본이 자랑하는 기술은 독보적인 것이 아니라 구미 제품을 값싸고 품질 좋게 개량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일본이 수출 규제하는 품목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결코 대체 불가한 제품들이 아니다. 일본이 구미 제품을 개량했듯이 우리도 얼마든지 일본 제품을 따라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는 일본 기업과 제품의 수명을 단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는 사실을 무시한 일본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결정으로 인해 일본이 자칫 기술 후진국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가야 게이치의 경고를 다시 한 번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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