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외세 의존하다 국권 손상…타산지석 삼아 자주 국가로 나가야

내년 미 대선을 앞두고 공화․민주 양당의 주자들이 동유럽의 빈국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력 행사를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검찰총장 해임’, ‘탄핵’, ‘적폐’, ‘협박’, ‘도덕성’ 등 우리에게도 낯익은 낱말들이 난무해 흥미롭기까지 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우크라이나의 처지는 안중에도 없고, 미 대선에서 이 문제가 어느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인가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당사자인 공화․민주 양당 또한 ‘프레임 전쟁’을 통해 기선을 제압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세계 최강국의 대선이라 관심사도 우선일 수밖에 없으니 내용을 먼저 알 필요는 있다.

먼저 공세에 나선 건 재선을 노리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최근 백악관 기자들에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는 통화 도중 민주당 대선 후보로 당내 경쟁 중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의 아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부패를 언급했다고 전했다.

바이든과 그의 아들이 저지른 부패란 지난 2016년, 당시 오바마 행정부 부통령이던 바이든이 자신이 아들이 재직하던 우크라이나 에너지 회사의 범죄 수사를 이끌던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을 해임하라고 압박한 사실을 말한다. 트럼프로서는 ‘바이든 스캔들’로 프레임을 짜 민주당 전체를 공격하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앞서 2014년 친러시아파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물러나고, 친서방파인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이 당선됐다. 이에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새 정부 핵심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천연가스 생산을 늘리라고 조언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해 4월 아들인 헌터 바이든이 아무 연고도 없던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회사 ‘부리스마 홀딩스’의 사외이사로 들어갔다. 월 5만달러의 고액 연봉을 받는 자리였다.

그런데 2015년부터 ‘부리스마 홀딩스’가 돈세탁과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수사를 지휘하던 우크라이나 검찰총장 빅토르 쇼킨은 소위 ‘친러 적폐 세력’으로 인식되던 인물이었다. 이에 바이든은 2016년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당시 포로셴코 대통령에게 쇼킨을 해임하지 않으면 미국의 10억달러 대출 보증을 중단할 것이라고 압박했다고 한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의회는 2016년 3월 표결을 거쳐 쇼킨 해임을 결정했다. 이후 ‘부리스마 홀딩스’는 수사망에서 빠져나왔고, 헌터는 지난 4월까지 5년간 이 회사에서 근무했다.

트럼프의 주장은 바이든이 가족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부통령직을 이용해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협박했다는 것이다. 바이든으로서는 의혹만으로도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은 셈이다. 여기서 멈췄으면 되는데,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만일 바이든 부자의 부패를 그냥 놓아둘 경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를 중단할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고 전했다.

이에 민주당은 트럼프가 유력한 대선 경쟁자에 대한 뒷조사를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부탁하며 협박까지 한 것은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오히려 이를 ‘트럼프 스캔들’로 프레임화하고 있는 것이다. 당사자인 바이든도 트럼프가 혐오스럽다고 비판했다. 물론 트럼프는 민주당이 ‘바이든 스캔들’을 ‘트럼프 스캔들’로 돌리려고 애쓰고 있다고 반격에 나섰다.

이처럼 미 대선이 ‘스캔들 프레임’이라는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는 와중에 눈여겨 볼 대목은 미국 양대 정당의 정치 지도자들로부터 협박을 받은 약소국 우크라이나의 처지다. 우크라이나는 미국 정치권에서 펼쳐지는 정쟁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었다.

물론 그 상처는 스스로 자처한 면이 있다. 우크라이나 정치인들이 친서방파니, 친러파니 편을 갈라놓은 뒤 이를 문제 삼는 외부 세력의 협박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약소국의 비애를 떠나 독립적인 자주 국가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했기에 국권 손상이라는 치욕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강대국 내 정치인들의 정쟁이나, 강대국 간의 싸움에서 약소국들은 언제라도 우크라이나처럼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강대국의 논리에 따라 흔들린 약소국 지도자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최근 우리 정부가 과거 정부 때 일본과 잘못 얽힌 매듭을 푸는 데 애를 먹고 있는 것도 어쩌면 과거 지도자들이 드러나지 않는 외세의 영향력 행사에 굴복해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억측도 해본다. 잘못된 선택이 없었다면 우크라이나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고, 있었다면 이제부터라도 흔들림 없이 자주 국가의 길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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