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 한목소리로 ‘검찰개혁’ 함성 울려 퍼져

2019년 9월 28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서울 강남에서 ‘개벽’이 일어났다. ‘검찰개혁’을 외친 ‘200만 함성’이 하늘을 덮었고 ‘200만 발소리’가 땅을 흔들었다.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시민연대)는 이날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중앙지검) 앞에서 ‘제7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를 개최했다. 시민연대는 200만명 이상이 참석했다고 추산했다. 2016년 12월 3일 서울 광화문에서 개최된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집회’에 참석한 170만명을 넘어선 인원이다.

필자가 서초역 사거리의 향나무 부근에서 바라보니 북으로 서초경찰서를 지나 서울성모병원 사거리까지, 남으로 예술의 전당까지, 동으로 교대역 사거리까지의 8차선 도로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우연히 만나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인증샷을 찍은 고교 후배들은 이렇게 외쳤다. “강남고속터미널부터 난리예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여기 서초역 사거리까지 오는데 엄청 힘이 들었어요. 광화문 촛불집회 때보다 많은 것 같아요.” 필자가 보기에도 광화문 촛불집회 인원을 넘어선 것 같았다.

그런데 서울 서초을이 지역구인 자유한국당 박성중 의원은 “경찰의 과거 시위 인원 추산 방법인 ‘페르미 기법’을 적용하면, 시위대 점령지대인 ‘누에다리~서초역’의 경우 추산인원이 3만3000명에서 5만명이라고 주장했다. 소도 웃을 일이다. 누에다리는 서울성모병원에서 서초역 중간에 위치한 서초경찰서 옆이다. 참가자들은 누에다리에서 반포대교 방향으로 한 참 내려온 서울성모병원 사거리에서부터 운집했다. 서울성모병원 사거리에서 예술의 전당까지는 100만명이 참석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필자는 중학생 시절인 1969년 3선 개헌 반대운동 집회에 참가한 이래로 1971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유세, 1980년 5월 서울역 학생시위, 1987년 이한열 열사 장례식, 1987년 대선 때 김대중-김영삼-노태우 후보의 여의도광장 유세, 2008년 광우병 반대 촛불집회, 2016년 박근혜 정권퇴진 촛불집회 등 대규모 집회에 참석했다. 그 경험에 비춰볼 때, 이번 ‘9 28 촛불집회’가 5만명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30분 참석한 사람, 1시간 참석한 사람, 2~3시간 참석한 사람 등 오후 4시부터 저녁 9시까지 집회현장에 참석했던 모든 인원을 합산해야 한다. 한 순간의 사진만 보고 ‘페르미 기법’으로 계산하는 것은 맞지 않다.

이번 촛불집회는 3년 전 광화문 촛불집회와는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첫째로 깃발이 거의 없었다. 3년 전에는 민노총 등 많은 진보 단체들의 깃발이 숲을 이뤘다. 그러나 ‘9 28 촛불집회’에는 깃발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마디로 조직 동원이 없었다.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 촛불집회였다. ‘관제데모’라고 비판하는 것은 더 큰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둘째로 체계적인 대회 진행시스템이 없었다. 중앙지검 앞 단상을 제외하고는 전광판도 스피커 시설도 없었다. 예술의 전당과 교대역 방향에는 시민연대 본부의 진행 상황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대신 누군가 “정치검찰”을 선창하면 참석자들은 “물러나라”고 외쳤다. 또 다른 사람이 “검찰개혁”을 선창하면 “조국수호”를 외쳤다. 그냥 도로에 앉아서 손을 흔들고 자발적으로 구호를 외치고 함성을 질렀다.

셋째로 30대, 40대, 50대 여성들이 대거 참여했다. 명품 백을 든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구호를 외쳤다. 한 후배는 “우리 집사람은 청심국제중고 학부모들과 오후 4시부터 참석했어요. 강남 엄마들이 뿔이 났더라고요”라고 했다. 남편과 함께 참석한 40대 여성 한 분이 필자에게 대검찰청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서초경찰서 앞 건물을 가리키며 “저 건물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그 여성은 갑자기 대검찰청을 향해 손을 뻗으며 “야, 윤석열 내려와!”라고 외쳤다. 그의 남편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넷째로 많은 중산층, 중도계층이 조용히 참석했다. 3년 전 광화문 촛불집회에는 민노총, 정의당과 민중당 등 진보세력이 요란하게 참석했으나 이번 ‘9 28 촛불집회’에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강남3구 중산층과 중도계층은 소리 없이 대거 참석한 것이다. 옷차림, 표정, 대화, 몸짓 등이 광화문 집회와는 확연히 달랐다. ‘좌파들의 조직적인 집회’라는 보수인사들의 폄하는 거대한 착각일 뿐이다. 3년 전 광화문 촛불을 연상해 이번 ‘9 28 촛불집회’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판단오류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껴보고 나서 판단해야 한다.

서초역 사거리에서 교대역 쪽으로 조금 내려오자 길바닥에 깔린 검찰을 풍자한 만평이 눈길을 끌었다. 너도나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한마디씩 했다. “해도 너무 했어.”, “검찰독재야.”, “이번에 바꿔야 돼.”

오후 8시 30분이 지나 서초동 뒷골목 식당을 찾았다. 수십 명씩 줄을 선 식당도 있었고 재료가 다 떨어져 손님을 받을 수 없다는 곳도 있었다. 필자 일행 중 한 명이 “윤석열 총장이 서초동 경기를 살렸어”라고 말하자 모두들 웃었다. 식당마다 인산인해를 이뤘다.

일행들과 함께 간신히 자리를 잡은 한 식당에서 토론회(막걸리를 마시며 나눈 대화여서 발언자를 익명처리 했음)가 열렸다. 모 로스쿨 A교수는 “정경심 교수는 기소돼 피고인인데 어떻게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느냐. 지구상 어느 나라에도 피의자가 아닌 피고인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B변호사는 “정 교수 담당 변호사가 애를 먹고 있다. 검찰이 정 교수에 대한 공소장 기록을 복사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아직도 공소내용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다른 로스쿨 C교수는 “최근 홍콩에 가서 그곳 형사제도를 봤는데, 영국식이어서 검찰이 전혀 수사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 경찰이 수사를 전담하고 검찰은 그저 인권침해 여부를 들여다 볼 뿐이다. 우리가 홍콩보다 못해서 되겠는가”라며 개탄했다.

대화는 자연 정치 쪽으로 흘렀다. 전직 언론인 D씨는 “조국 법무부장관이 오늘을 계기로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했다”고 전망했다. “조국 수호”를 외친 200만명의 거대 팬덤(열성적 지지자)이 형성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검찰은 분명 ‘오판’한 것으로 보인다. 조국 장관 가족 의혹을 집중 공격함으로써 낙마시킬 수 있다고 계산해 과잉수사, 기습기소, 11시간 자택 압수수색을 단행했으나 이는 역으로 ‘200만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오히려 그동안 침묵했던 중산층과 중도계층의 잠자던 민주의식을 일깨웠다. 검찰의 심장부이자 보수의 텃밭인 강남3구를 뒤집어놓은 것이다.

밤 11시가 넘어 귀가하면서 불현 듯 이제마(李濟馬)의 “귀로 천시를 듣는다(耳聽天時)”는 ‘동의수세보원’의 구절이 떠올랐다. ‘하늘의 시간은 소리로 듣는다’는 말은 백성의 소리,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시대의 정신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민심이 곧 천심이다’는 말과도 같다.

오늘의 시대정신은 ‘검찰개혁’이며, 그 주도세력은 국민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200만 함성’은 ‘검찰의 침몰’을 예고한 ‘하늘의 소리’, ‘땅의 소리’, ‘사람의 소리’로 들린다. 천시는 표면에 나타난 현상만을 보고는 알 수 없다. 저 심연에서 솟아오르는 소리를 들어야 알 수 있다. 천시를 외면한 ‘광기’는 자기파멸을 인도한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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