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쓰라-태프트 밀약, 포클랜드 전쟁서 미국의 이중적 행태 드러나
미, 독도방어훈련 비판…정부·국민 한 목소리로 영토수호의지 보여야

우리 전투기의 독도 상공 비행을 놓고 미국이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여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국군의 날이었던 지난 1일 두 대의 전투기를 독도 상공까지 출격시킨 것을 놓고 미 국무부 대변인실은 “최근 한국과 일본 사이의 의견 충돌을 고려할 때 리앙쿠르 암(Liancourt Rocks)에서의 군사 훈련 등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생산적이지 않다”고 입장을 밝혔다.

리앙쿠르 암은 중립적 의미로 표기하는 독도의 명칭이기 때문에 이 명칭을 사용한 것에서부터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희석하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는 지적이다. 미 국무부는 앞서 지난 8월 25일~26일 실시된 한국의 독도 방어훈련에 대해서도 비판한 바 있다.

과연 미국의 입장은 뭔가. 한국과 일본, 두 동맹국의 분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뜻일까, 아니면 독도 영유권을 놓고 한국보다는 일본의 편을 드는 것일까. 아직까지는 미국이 애매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만약 사태가 양국의 실제적인 충돌로 이어질 경우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를 판단해볼 수 있는 과거의 사례가 있다.

전후 상황과 전개 과정 등은 다르지만,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벌어진 포클랜드 전쟁 당시 미국의 태도가 우려를 낳는다. 한국과 일본처럼 영국과 아르헨티나도 당시 미국의 동맹국이었다. 또한 사태 이전에는 애매한 중립을 지켰다. 하지만 정작 전쟁이 벌어지자 미국은 사실상 일방적으로 영국 편을 들었다.

사태는 1982년 4월 초,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이 취약한 정권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코앞에 있는 ‘포클랜드 제도’가 아르헨티나 영토임을 주장하며 이곳을 침략, 영국의 소규모 주둔군을 몰아내면서 시작됐다. 아르헨티나가 ‘말비나스’라고 부르는 이 섬은 독도만큼 복잡한 영유권 분쟁이 치러지던 곳이었다.

식민지 개척 시절 서구 열강들이 돌아가며 정착촌을 구성하던 이 섬은 1811년 스페인이 마지막으로 철수한 이후 무인도로 남게 됐다. 그러다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아르헨티나가 당시 스페인의 영토였던 이 섬도 같이 승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833년 영국이 주변 해역의 안전보장을 위해서라며 전함을 보내 섬을 점유, 분쟁 지역이 됐다.

분쟁 역사가 복잡한 만큼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 주장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의 의견이 엇갈리거나, 중립을 지킨다. 영연방 국가들은 이 제도에 대한 영국의 영유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이들 중 카리브 공동체 국가들은 최근 아르헨티나의 입장을 지지한다. 미국은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어쨌든 1982년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이 이 섬을 점유하자 영국은 독재정권의 침략을 응징하지 않을 경우 영국의 입지에 상처를 입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공격의 빌미를 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군 장관 피터 브레이커는 “남대서양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은 유럽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과 같다. 영국은 나토 동맹을 고무시키고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영토의 자유와 유럽의 자유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유럽을 끌어들인 것이다.

당시 영국 수상 마가렛 대처는 아르헨티나 군을 포클랜드 제도에서 내쫓기 위해 해군 병력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의회는 물론 국민, 그리고 야당인 노동당 당수 마이클 풋까지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눈여겨 봐야할 것은 당시 로널드 레이건이 이끌던 미국이 보여준 태도다. 미국은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제도 침략과 이를 되찾겠다는 영국의 대응에 당황했다. 아르헨티나는 소련의 라틴 아메리카 침략을 막는 중요한 동맹국으로서,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에게 훈련 기지를 제공하고 있었다.

유엔주재 미 대사인 진 커크패트릭 등 레이건의 측근들은 영국 ‘제국주의자’들과 지나치게 밀착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아르헨티나 보다는 영국을 지지하는 게 훨씬 이익이 컸다. 미국이 유럽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레이건은 서둘러 지원 병력을 파견, 1982년 여름 영국이 포클랜드 제도를 되찾도록 지원했다. 

이제 독도 문제로 돌아와 보자. 중립을 지킨다면서도 포클랜드 사태 당시 중립을 지키지 않았던 미국의 이중적 행태가 또 다시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미국의 이중적 행태는 포클랜드 사태를 떠나 1905년 조선을 일본에 양도하고 미국은 필리핀을 차지하기로 한 가쓰라-태프트 밀약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철저하게 우리의 이익을 챙기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의 동맹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우리의 고유 영토에 대해 제3자인 미국이 왈가왈부하지 못하도록 확고한 입장 표명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처럼 여야는 물론, 국민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