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축식 대통령 불참 잘못된 관행 반드시 바로 잡아야
역사가 깊은 나라 고유 연호 사용…‘단기’ 사용 복원해야

지난 3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4351주년 개천절 경축식에 민주당 이해찬‧바른미래당 손학규‧평화당 정동영‧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참석했다. 그러나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이날 오후 광화문에서 개최된 ‘문재인 정권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규탄대회’ 준비를 위해 불참했다.

정의당 오현주 대변인은 “제1야당 대표가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축하하는 국경일에 같은 시간도 아니고 오후에 열리는 장외집회 핑계로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밖에 비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황 대표가 국경일보다 장외집회를 우선시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개천절은 단군왕검이 기원전 2333년 고조선을 세운 것을 기념하는 날로 한민족의 생일이다. ‘개천(開天)’은 원래 환웅(桓雄)이 기원전 3897년(5916년 전, 기원전 2457년이라는 주장도 있음) 음력 10월 3일 환인(桓因)의 뜻을 받아 처음으로 하늘 문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홍익인간·이화세계’의 큰 뜻을 구현하기 위해 배달나라를 세운 것을 의미한다.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해 경축식을 개최했다.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직후 개천절은 공휴일로 지정됐으며, 1949년 10월 1일 공표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5대 국경일로 채택됐다.

제헌국회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제정 직전에 1948년 9월 12일 단기(단군기원)라는 연호를 사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연호에 관한 법률’을 의결했다. 법률 제4호인 이 법이 공표된 것은 1948년 9월 25일. “민족의 단일성과 국가의 동일성 및 역사의 유구성을 내외에 과시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고유의 연호를 제정하려는 것”이 단기 연호 사용을 위한 법안 제정의 취지다. 법률안에 첨부된 ‘제안이유’에 나와 있다.

당시 국회는 법안 심의과정에서 학계와 언론계 등 각계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청취했다. 그리고 ‘연호에 관한 법률’은 재석 133명 중 찬성 106명, 반대 5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 반면 이승만 대통령이 주장했던 임시정부 수립에서 기원하는 ‘대한민국’이란 연호는 채택되지 못했다.

그런데 단기 연호는 5 16군사쿠데타에 의해 폐기됐다. 단기 연호를 폐기하고 서기(서력기원)를 채택한 ‘연호에 관한 법률 중 개정법률안’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지시(국가재건최고회의 제83회 각의록에 수록된 ‘연호에 관한 법률안’에 첨부된 ‘제안이유서’ 참조)에 따라 폐기된 것이다. 즉, 1961년 10월 군사정권의 통제를 받고 있었던 내각사무처장의 명의로 단기 연호 폐지 법안은 상정돼 법제처 심의를 거쳐 11월16일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의결됐다. 12월2일 법률 제775호로 공포됐고, 1962년 1월1일부터 시행됐다. 대한민국 제4호 법률로 제정돼 13년 간 사용됐던 단기 연호가 군사정권에 의해 없어진 것이다.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박 의장 저서에 따르면(정영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단기 연호의 배경과 법제화, 그리고 폐기’ 논문 참조), 박 의장은 한국사를 “퇴영과 조잡과 침체만이 이어진 역사”라고 폄하했다. 심지어 “단 한 번도 나라다운 나라를 세워보지 못한”역사라고 비하했다. 그는 “막연한 옛날의 미련이나 허술한 역사의 나이만을 자랑할 수는 없으며,”“이 모든 악의 창고 같은 우리의 역사는 차라리 불살라 버려야 옳은 것”이라고 극언했다. 우리 민족사와 민족문화에 대한 박 의장의 인식이 얼마나 부정적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이승만이 단기연호 사용을 반대했고, 박정희가 단기연호를 폐기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무엇을 의미한가. 이는 민족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민족정기를 말살했던 세력이 바로 한국 보수세력의 뿌리였다는 점을 강력히 웅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해방직후 우익은 단기, 좌익(북한 포함)은 서기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보수 세력일수록 개천절을 소중히 여기고 단기연호 복원을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천절에 ‘조국퇴진 장외집회’를 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이번 개천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는 이낙연 국무총리를 향해 한 여성이 “왜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습니까”라고 고함을 질렀다. 큰 소동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나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이 총리는 “국조 단군께서 주신 ‘홍익인간’과 ‘이화세계’의 꿈은 결코 오랜 것이 아니고 바로 오늘의 과제”라고 강조면서 발전·민주·포용·화합·평화 등 5대 당면 과제를 제시했으나 공허한 메아리로 들렸다.

역대 대통령의 개천절 경축식 불참은 문민정부 때부터 관례가 된 것이라지만, 이는 매우 잘못된 관례다. 특히 올해 경축식 행사장에는 빈자리가 두드러지게 눈에 띠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황 대표의 불참이 그 원인의 하나일 터.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개천절 경축식 불참은 마땅히 재고돼야 한다. 국경일 경축식에 국가원수가 불참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런 관행은 ‘친일과 독재의 적폐’를 상기시켜 줄 뿐이다.

아울러 차제에 단기 연호도 복원돼야 한다. 2013년 당시 민주당 이종걸 의원 등 14명의 의원들이 서기와 단기를 병기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연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으나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게다가 공공기관의 단기 사용이 불법행위로 금지되고 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대업에는 여야가 따로 일수는 없다. 제발 이번 정기국회에서 단기 연호 복원을 재추진하기 바란다.

이스라엘, 에티오피아, 태국, 네팔, 아프가니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등 역사가 오래된 나라일수록 자국의 고유한 연호를 사용하고 있다. 5000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고유한 연호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이 가슴을 때린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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