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의 개입과 위협에 맞서지 않고 따르면서 비극 이어져
일본의 경제 도발 등에 당당히 대처해야 ‘국제 호구’ 안돼

세계 최대의 소수민족 쿠르드족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터키가 시리아의 쿠르드족 민병대에 대한 군사작전을 개시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며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비판은 쿠르드족이 토사구팽 당했다는 데 모아지고 있는 것 같다. 시리아에서 극단주의 조직 이슬람국가(IS)를 소탕하는 과정에서 쿠르드족 민병대와 긴밀히 협력했던 미국이 IS가 실질적으로 세력을 모두 잃자 사실상 그들을 외면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시리아의 민병대뿐만 아니라 쿠르드족은 실제로 IS를 몰아내는 데 큰 공헌을 했다. 2014년 IS가 ‘칼리프국가 수립’을 선언하고 잔학 행위를 저지르자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정부의 정규군이 앞장서 싸웠고, 시리아에서도 쿠르드족 반군이 민병대를 만들어 IS와의 전쟁에 나섰다. 특히 시리아의 쿠르드족 민병대는 미군과 공조해 시리아에서 IS를 몰아내고 시리아 북동부를 장악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사구팽을 당한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미국의 여당인 공화당 내에서조차 ‘동맹에 대한 배신’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쿠르드족이 처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는 달리 어느 누구도 쿠르드족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게 현실이다.

이 사태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여기서 반드시 짚고 가야 할 점은 쿠르드족의 비극이 어디에 기인하는가이다. 쿠르드족의 비극은 한마디로 외부 여건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끝없는 분열로 인해 외세의 개입을 자초한다는 데 있다.

중동에서 네 번째로 많은 2500만의 인구를 지닌 세계 최대의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의 역사는 곧 분열의 역사이기도 하다. 각지에 흩어진 쿠르드족은 터키계, 이란계, 이라크계 등으로 나뉘어 대립했고, 강대국과 주변국들은 쿠르드족의 분열을 조장하거나 이용했다.

이들이 여러 나라로 흩어진 이유는 20세기초 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영국의 농간 때문이었다. 당시 쿠르드족의 거주 지역은 오늘날 터키와 시리아, 이라크 등이 접경해 있는 쿠르디스탄이라는 산악지역이었는데, 영국은 쿠르드족 거주 지역 가운데 석유가 매장된 모술 일대만 식민 통치 지역인 이라크에 편입시키고 나머지 쿠르드족 거주 지역은 방치했다.

이후 터키 역시 건국 과정에서 쿠르드족이 거주하던 일부 지역을 터키 영내로 편입시켰다. 이 과정에서 일부 투르크족은 터키 건국에 협조하기 위해 다른 투르크족을 학살하는 등 분열이 나타났다. 이 때문에 쿠르드인들의 국가 건설은 무산됐다. 또한 여러 나라에 따로 떨어져 살다보니 생각도 달라져 다른 지역 쿠르드인들과 문화적, 지역적 갈등까지 빚고 있다.

국적별로 싸우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은 국가 내에서도 다툼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이라크 쿠르드족의 양대 세력인 쿠르드민주당(KDP)과 쿠르드애국동맹(PUK)의 갈등이다. 1994년과 1997년 등 여러 차례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치렀고, 이 과정에서 KDP는 이라크를, PUK는 이란을 끌어들이기도 하는 등 갈등의 유서가 깊다.

투르크족의 분열과 토사구팽을 보는 우리의 시각도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또한 외세의 개입과 간섭에 남북으로 갈린 과거가 있고, 어떤 면에서는 지금도 외세의 개입과 위협에 맞서기보다는 이들과 합세해 분열을 조장하고 있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군대를 주둔시키면서도 주둔 비용을 더 부담하라고 위협하고 있고, 일본은 자국이 먼저 경제 도발을 단행하고서도 우리에게 이를 해결할 방안을 가져오라고 압박하고 있다. 일본이 경제 도발을 단행했을 때는 아예 대놓고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앞장선 무리들도 있었다.

우리가 쿠르드족보다 나은 건 나라를 지니고 있다는 것뿐 아닐까. 외세의 이익을 대변하고 외세의 주장을 따르는 세력은 쿠르드족이 겪는 비극의 원인이 분열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주지해야 할 것이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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