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언론 개혁 의지 가득…국회에도 질타 이어져

서울 여의도. 필자에겐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1986년부터 국회의원 보좌관, 정치부 기자로 30여년 여의도에서 활동했다. 실제로 여의도에서만 20년 이상 살았다. 세 자녀도 여의도에서 태어나 여의도에서 성장했다.

10월 26일 토요일 오후 4시, 오랜만에 여의도를 방문했다. 여의도의 가을바람은 차가웠다. 지하철 여의도역 3번 출구에서 나와 여의대로 절반을 건너자, 마포대교 방향으로 ‘사법적폐청산 검찰개혁 범국민시민연대’가 마련한 대형 화면과 무대가 설치돼 있었다. 30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영등포 방향에도 대형화면이 설치돼 있었다.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제11차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촛불시민들은 마포대교에서 서울교까지 여의도 공원 쪽 7개 차선의 여의대로 바닥에 앉아 ‘응답하라 국회’라고 쓰인 노란 풍선과 태극기 문양의 피켓을 들고 “공수처를 설치하라”, “검찰을 개혁하라”라고 소리 높이 외쳤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민들 위로 드론이 날고 있었다.

무대 뒤에서 영화감독 겸 고발뉴스 대표인 이상호 기자(전 MBC기자)를 만났다. 필자가 “이상호씨”라고 크게 부르자, 이 기자는 “아이구, 사장님 안녕하세요”라며 반갑게 맞이했다. “고생이 많지요. 대통령의 7시간(President's 7 Hours, 2019)이 기다려집니다. 언제 개봉하죠”라는 질문에, 그는 “11월 14일 개봉합니다”라고 대답하며 쑥스러워했다. 건강, 소송문제, 정부의 개혁의지, 언론개혁 등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다.

그러는 사이에 대형화면에는 안중근 선생을 추모하는 영상 ‘대한국인 안중근’이 상영되고 있었다. 26일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 1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선생의 일대기를 담은 영상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자막으로 나온 선생의 유언이 또 다시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이어 가수 한영애씨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반드시 올 것”이라며 인사를 하고 ‘샤키포’(세상을 깨우는 주문, 기적을 일으키는 주문)를 열창했다. “손을 높이 들고 손뼉을 치면서 당당하게 부딪치자. 세상은 변할 테니까”라는 대목이 가슴에 닿았다. 대표곡 ‘누구 없소’를 노래한 뒤 “우리가 대한민국이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민주다. 우리가 대한민국 민주의 미래다”를 외쳤다. 촛불시민들과 함께 ‘검찰개혁’이란 구호도 세 번 외치고 ‘조율’이란 노래를 불렀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주세요”라는 가사가 “하느님! 검찰개혁을 조율해주세요”라는 기도로 들렸다.

백금열 판소리 명인도 등장했다. 그는 검찰 언론 정치권을 풍자한 ‘흥보가 박타는 대목’을 불렀다. “에이으어~ 박을 주소 시르렁~ 시렁~ 시르렁시르렁~ 시르렁시르렁~ 박이 반쯤 벌어지니~ 뜻밖에 박통 속에서 대통령들이 나온다”면서 이명박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성대모사를 판소리로 표현해 웃음을 자아냈다. “정치검찰 몰아내고 기레기를 쓸어내자”며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담은 소리를 구성지게 불렀다.

사회자의 ‘언니의 귀환’이란 소개와 함께 최민희 전 의원이 절뚝거리며 연단에 올랐다. 집회 장소로 오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오른 발을 다쳤다고 한다. 그럼에도 최 전 의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여의도 하늘을 갈랐다. “군부독재보다 더 독한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다. 그것은 검찰 공포 바이러스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검찰이 제일 세다. 검찰은 직접수사권, 수사지휘권, 기소독점권, 영장독점권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검찰의 수사·기소의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검찰이 내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서워 살겠나.”

이상호 기자도 연단에 올라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가를 다룬 ‘대통령의 7시간’ 예고편을 잠시 보여주고 영화를 소개했다. “10월 초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작품”이라며 “공포 영화가 아니라 코믹 영화”라고 설명했다. 다큐멘터리 ‘대통령의 7시간’은 ‘컬트 코믹 다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10~20대 학생들에게 얼마나 엉터리 사람들이 청와대에서 민심을 이반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기록용으로 이 영화를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11차 촛불집회의 절정은 2명의 대학교수 연설. 서초동 촛불집회에서 명성을 날렸던 김민웅 경희대 교수와 우희종 서울대 교수가 연단에 올랐다.

목사 출신 김민웅 경희대 교수는 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사자후를 토했다. “쿠데타 내란음모를 꾸민 자들이 있습니다. 그냥 나둘까요. 엄벌에 처해야겠지요. 이런 자들을 뒤로 빼돌린 자들도 있습니다. 공범 아닙니까. 역시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들을 수사도 하지 마라, 처벌도 하지 말라고 불기소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게 바로 정치 검찰입니다.”

김 교수는 “파리, 모기가 반대한다고 에프킬러를 뿌리지 말아야 합니까”라는 고(故) 노회찬 의원의 어록을 인용하며, 현재 공수처를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모기로 공수처를 살충제로 비유했다. 그는 내란음모를 꾸민 자들과 내란음모수사를 방해하는 자들을 수사하기 위해 21세기 현대판 ‘암행어사’, ‘국민어사’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공수처 설치를 강력히 주장했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도 “검찰 개혁에 앞장선 조국 전 장관을 무리한 수사로 물러나게 했다”면서 “검찰이 저렇게 자신들의 권력인 수사 기소권을 가지고 제멋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견제하고자 하는 게 공수처법”이라고 주장했다. “검찰들이 수사 기소권을 자기들 입맛대로 사용하는 것은 사회를 병들게 하는 사회악”이라면서 “국회의원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형 태극기 퍼포먼스이후, 가수 강산에가 등장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노래에 앞서 “최근에 아주 비겁하기 짝이 없고 악랄한 민낯을 드러낸 검찰과 언론들을 이번에 이런 상황이 아니었으면 제대로 몰랐을 것”이라며 “이렇게 두꺼운 얼굴을 한 분들과 민생법안을 발목 잡는 의원들을 위해 노래하겠다”고 말했다. 그 노래는 경상도 사투리로 된 ‘와그라노’. “와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와그라노 워우와/아우와 그래쌌노/뭐라케쌓노 뭐라케쌓노 니니 와그라노”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어 그의 대표곡 ‘명태’와 ‘라구요’가 촛불집회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11차 촛불집회는 오후 7시 35분쯤 끝났다. 촛불시민들이 영등포 자유한국당 당사로 행진하는 것을 보면서 무료 대추차를 얻어 마시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여의도역 9호선 방면에서 5호선 환승장으로 이어지는 통로 양쪽 벽면에는 촛불시민들이 작성한 ‘이번이 기회다, 검찰 개혁하자’, ‘우리 아이에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등의 문구가 적힌 메모 수백장이 가득 붙어 있었다.

여의도를 떠나면서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국해의원(國害議員)들을 모두 바꾸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겠구나”는 생각이 떠올랐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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