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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 박사의 알기 쉬운 경제] 일본 수출 규제 120일의 성과와 과제
우리경제의 성장으로 산업 피해 예상보다 없어
실질적 소재·부품 산업 탈(脫)일본화 이루어져야
2019년 11월 05일 (화) 12:28:25 이원호 webmaster@smedaily.co.kr

지난 7월 4일 일본 정부가 전격적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생산 관련 3개 소재부품에 대해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한지 120일이 되었다. 그동안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진행된 양국 간의 갈등은 최근 들어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등 다소 완화되는 양상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일왕 즉위식 참석 차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아베 총리를 만나 대화의 물꼬를 트는 한편, ‘아세안+3’ 회의에서는 짧게나마 한·일 정상이 회담을 가지면서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다.

사실 한국과 일본은 정치·외교적인 문제에 있어서 늘 일정한 긴장감이 존재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상호의존도가 매우 높았다. 7~8월을 거치면서 양국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도 경제·산업계는 겉으로 드러내놓고 말은 못했지만 물 밑에서는 이번 사태가 조속하게 마무리되기를 갈망했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기업들이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국산화와 수입선 다변화를 추진함에 따라 한국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일본 소재·부품 기업들의 위기감이 일본 정부의 태도를 완화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물론 이러한 태도 변화가 곧바로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간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경제적 피해만 쌓여가는 현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수습을 위한 실무적인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는 가능하다. 따라서 새로운 한·일 간 관계를 정립하기에 앞서 지난 4개월 동안 진행된 갈등의 경제적인 영향을 파악하고 향후 대응 과제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달 30일 ‘일본 수출규제 100일의 경과, 영향 및 향후 대응’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에서 불매운동으로 일본산 의류, 식품, 자동차, 관광 등의 소비가 급감하면서 관련 업종이 큰 타격을 입은 반면,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로 인해 우리 기업이 입은 피해는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수출규제가 장기화 될 경우 부정적인 영향이 확대되어 우리 경제에 부담을 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수출규제 100일 동안 반도체 부문의 피해 사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소재·부품 수입 차질로 인한 반도체 부문의 피해 사례는 없다”고 밝혀 KIEP 보고서와 같은 맥락의 의견을 내놓았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에서 발표한 한·일 경제 갈등의 중간평가 보고서는 조금 더 직설적이다. 보고서는 일본이 강행한 수출규제 조치가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며 향후 국면이 장기화 될 경우 오히려 일본 경제의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실적은 한국의 대(對)일본 수출실적보다 2배 이상 큰 폭으로 감소했다는 근거를 들어 양국 간 무역 갈등의 중간평가는 사실상 ‘한국의 판정승’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일본의 수출규제 4개월의 경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먼저, 일본이 핵심 소재·부품의 수출을 제한함으로써 애초 경제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되었으나, 현재까지는 그 영향이 제한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는 우리 기업이 국산화를 서두르고 수입선 다변화를 통해 충격을 최소화해 나간 결과다. 다음으로 한국에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예상보다 거세게 일어 일본의 소비재 수출이 제로(0)에 가깝게 감소했다. 일본으로 여행 또한 크게 감소해 한국 관광객 의존도가 높은 일본의 일부 지방 도시들이 큰 피해를 입는 등 일본의 피해가 더 눈에 띤다.

이번 중간 점검의 성과는 일본이 전력을 다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기 위한 조치를 취했지만 우리 경제가 버틸 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 일본과 종속적인 경제관계에 벗어나 이제는 대등한 경제력으로 일본과 경쟁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우리가 가지게 된 점은 큰 성과라 하겠다. 

   
 

다만 일본의 핵심 소재의 수출규제로 인해 초기에 혼란에 빠졌던 점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그동안 수십 년 동안 소재·부품 산업의 탈(脫)일본화와 국산화를 외쳤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들 산업의 취약한 민낯이 그대로 드러냈다. 국산화를 외친 정부 정책의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한번 되돌아보아야 한다.

일본 소재·부품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비결은 사업성뿐만 아니라 기초과학에 대한 오랜 연구의 결과가 축적된 것이다. 따라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에 급급하지 말고 소재·부품 산업의 체질 개선과 함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관점에서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한다는 향후 과제가 남겨졌다는 점은 명심해야할 것이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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