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 규정을 폭넓게 허용 후 적응 순서에 따라 하나씩 없애야

정부가 주52시간 근로제 시행과 관련한 보완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2월 노사정 회의에서 합의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3개월에서 6개월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연내 처리가 불투명해지자 나온 대책이다.

발표된 내용에는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 때만 허용하고 있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요건을 완화해 일시적 업무량 급증 등 ‘경영상 사유’를 추가했다. 또한 내년부터 확대 시행하기로 했던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주52시간 근무제 적용에 대해서도 최장 1년의 계도 기간을 줄 계획이다.

앞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 고용부 브리핑에서 "탄력근로제 개선 등 입법이 안 될 경우 주52시간제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장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추진하겠다"면서 주52시간 근로제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중소기업계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18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1년 이상의 시행유예가 아닌 계도기간을 부여한 것에 다소 아쉬워하면서도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특별연장근로를 보완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라면서 업종의 특성 등 다양한 상황이 보다 폭넓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준비가 덜 된 중소기업에게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대책이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주52시간 근로제의 시행이 기업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작년 7월 1일부터 주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하고 있는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무난하게 안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사뭇 다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2일 주 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하고 있는 300인 이상 기업 200여개를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 결과, 응답 기업의 약 60%가 “근로시간이 빠듯하고 근로시간에 유연성이 없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기업들이 새로운 제도에 완전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

300인 이상 기업의 이러한 반응에 미루어 볼 때 혁신과 자금 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근로시간 단축법이 통과된 후 1년 이상이 지났지만 중소기업의 준비 상황은 더디기만 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중소기업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주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준비 상태에 대해 ‘준비 중’이라는 기업은 58.4%, ‘준비할 여건이 안 된다’는 기업은 7.4%로 나타났다. 그리고 ‘준비 중’이라 응답한 업체의 51.7%는 연말까지 준비하기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중소기업의 이러한 분위기를 파악한 박영선 중기부 장관도 주52시간 확대 시행과 관련한 질문에 "국회에서 심도 깊은 논의를 했었어야 하고, 통과시키면서 예외규정을 뒀었어야 하는구나 하고 반성한다"면서 제도가 지나치게 경직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달리 표현하면 중소기업이 처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지난해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이 국회를 통과할 당시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이 국제 기준으로 지나치게 길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2241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멕시코의 2255시간 다음으로 길다. 이는 OECD 평균 노동시간 1,763시간 대비 127%에 해당된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자기계발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낮은 노동생산성을 긴 노동시간으로 극복해 왔다는 점이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 28위로, 평균대비 68%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노동 시간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단기간에 기업들이 생산성 향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극복해 나간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특히 외부 환경 변화와 내부 혁신에 취약한 중소기업이 근로시간 단축에 신속하게 적응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다행이 이번에 300인 미만 기업에 대한 주52시간 근무제가 1년간 계도기간을 갖게 되어 중소기업으로서는 다소 시간을 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제도가 중소기업 전반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금보다 더 많은 예외규정을 두어야 한다. 일단 예외규정을 폭넓게 허용한 후 중소기업이 적응해나가는 순서에 따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하나씩 없애가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현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김부겸 민주당 의원이 한 유튜브 방송에 나와 주52시간·탈원전 등 현 정부 주요 정책에 대해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말은 아무리 명분이 있고 좋은 정책이라 할지라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조속하게 시행한다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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