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삭발→단식→필리버스터로 얻어지는 게 아냐
여야 간 대화 협상과 투쟁은 일정한 선 넘지 말아야

한국정치가 혼돈에 휩싸여 있다. 국민은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국회를 쳐다보면 한숨만 나온다. 이번엔 자유한국당이 황교안 대표의 단식중단 이틀 만에 돌연 필리버스터 카드를 꺼내들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11월 29일 오후 1시 선거법 공수처법 검찰개혁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국회 본회의에 부의(附議)돼 있던 민생 법안 199개 전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이에 따라 사립유치원 회계투명성 강화를 위한 유치원 3법,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를 위한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데이터 3법’ 중 일부 법안 등 주요 민생·경제 법안들의 본회의 처리가 무산됐다. 그러자 ‘민식이 엄마’를 비롯한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 유가족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오열했다. “민생을 볼모로 삼았다”는 비난이 자유한국당에 쏟아졌다. ‘원 포인트 본회의’를 개최해 민생법안을 처리한다 해도 국회가 정상화되기는 쉽지 않다. 물론 필리버스터(filibuster)는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무제한 토론이라는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의사진행을 고의로 방해하는 것으로 ‘국회법 제106조의 2항(무제한 토론의 실시 등)’에 규정돼 있다. 불법은 아니다.

자유한국당이 선거법개정안 검찰개혁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야 간 합의로 상임위원회와 법사위까지 통과한 모든 민생 법안들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합의 부정이요 자기 부정이다.

정기국회가 열리자 황 대표는 ‘조국 사퇴’를 위해 삭발을 했다. 예산 국회를 앞두고 “국가 위기를 막겠다”며 단식을 시작했다. 황 대표의 단식이 중단되자 자유한국당은 민생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삭발’→‘단식’→‘필리버스터’로 이어진 자유한국당의 극한투쟁을 지켜보면서 과연 누구를 위한 정치행위인가를 묻고 있다.

2019년을 한 달 남겨 놓고 새삼 정치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논어 안연(顔淵)편 17장’에 따르면 공자는 노나라 계강자(季康子)가 정치에 대해 묻자 “정치는 바로 잡는 것이다. 그대가 바름으로써 솔선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政者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정자정야 자솔이정 숙감부정)”라고 말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이를 원용해 ‘여유당전서’의 ‘원정(原政)’에서 “정치는 바로 잡는 것이고 백성을 고루 살게 하는 것(政也者 正也 均吾民也‧정야자자 정야 균오민야)”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키워드는 ‘정(正)’. ‘正’은 ‘一’과 ‘止(지 : 멈춘다)’의 합성어다. 염정삼 박사는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에서 “‘正’은 옳다는 뜻이다. ‘一’로 구성되어 있다. ‘一’로 멈추게 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正’은 ‘하나로 멈추게 한다’, ‘하나에 머물러야 한다’는 뜻이며 ‘하나를 끝까지 유지하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 ‘하나’는 무엇인가. 특히 정치에서 그 ‘하나’는 무엇을 뜻하는가. 애민(愛民‧백성을 사랑하는 것)이요, 위민(爲民‧백성을 위하는 것)이며, 균민(均民‧백성을 고르게 살게 하는 것)이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첫째도 민생이요, 둘째도 민생이며, 셋째도 민생이라는 얘기다. 모든 정치행위가 민생을 벗어나서는 안 되며 일관되게 민생에 머물러야 한다. 삭발도 단식도 필리버스터도 민생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과연 ‘삭발’→‘단식’→‘필리버스터’는 민생에 머물러 있었던 것인가. 첫째도 기득권, 둘째도 기득권, 셋째도 기득권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여야가 합의한 민생법안만큼은

처리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필리버스터 명분을 가졌을 터. 이제는 철회해도 늦었다. 명분도 실리도 잃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민심을 얻어야 한다. 민심은 ‘삭발’→‘단식’→‘필리버스터’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민생을 챙길 때 가능하다. 끊임없이 민생을 챙기다 보면 어느 순간 저절로 얻어지는 게 민심이다.

특히 의회정치에선 여야 간 대화 협상과 투쟁은 일정한 선을 넘지 않으면서 진행돼야 한다. 강온 양면의 전략을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일정한 선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의회정치가 발전하고 나라가 부강해지며 민생은 안정된다. 그렇지 않는 의회정치는 그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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