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의존적 관계에서 수평적 분업 관계로 발전
4차 산업혁명 ‘변화기’ 우리가 주도적 역할해야

한국 IT 기업인 네이버와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라인과 야후재팬 간의 경영 통합에 최종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달 18일 양사 통합에 관한 기본계약서를 체결했으며 본 계약은 연내 체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통합 후에는 지분 50대50의 조인트벤처 회사인 Z홀딩스를 통해 라인과 야후재팬 등을 운영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국가에 이르는 사용자 1억명 이상의 거대 인터넷 생태계를 구축해 글로벌 경쟁에서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경영 통합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IT 기업 간 협업에 일본 기업인 소프트뱅크가 먼저 네이버에 손을 내밀어 구애를 했기 때문이다. 2001년부터 일본 포털 사이트 점유율 1위를 독주해 온 야후재팬이지만 최근에는 구글과 유튜브의 추격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였다. 실제로 구글과 유튜브를 합치면 이용자 수에 있어서 야후재팬을 넘어섰고, 모바일 시장에서는 이미 구글에 선두를 뺏겼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라인의 도움이 절실했다는 것이 이번 통합의 배경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일간 경제협력 관계가 최악의 상황인 상태에서 새로운 차원의 협력관계를 만들어냈다 데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더욱이 그동안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일본이 기술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일본 최고 기업이 먼저 우리 기업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점이 시선을 끈다. 이는 첨단 IT 분야에 있어서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일본을 추월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일이다.

한·일 산업협력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 왔으며, 이를 통해 양국의 경제와 산업은 크게 발전했다. 협력 초기단계에는 경제력과 기술 수준의 차이로 인해 우리나라가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수직적인 관계에 있었지만, 우리 경제력이 커짐에 따라 수직적 관계는 점차 수평적 분업 관계로 발전하는 단계를 거쳤다.

2015년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즈음해 산업연구원(KIET)에서 발간한 ‘한·일 산업협력 패턴 변화와 향후 과제’라는 보고서에서는 한·일 산업협력을 시기별로 맹아기, 성장기, 발전기, 성숙기의 4단계로 구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맹아기(1965~1980)와 성장기(1981~1998)는 한일 기술협력과 경제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나 한국의 일본 의존도가 높았으며, 기술·경제 차로 인해 일방·수직·의존적 관계에 머물렀다. 발전기(1998~2007)에는 그동안의 일방적 관계에서 벗어나 교류를 벗어나 기업 간 전략적 제휴가 본격화됐다. 2008년 이후 현재까지는 성숙기로 수평적 분업 단계로 발전해 왔다.

보고서는 양국 간 경제 교류와 산업협력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해 온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부품소재의 대일본 무역적자 현상을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한다. 특히 정치외교적인 갈등이 경제적인 악영향으로 나타나지 않게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KIET의 우려는 올해 들어 현실로 나타났다. 한국 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가 자국의 핵심 부품소재 제품의 수출을 제한하는 보복조치를 취하는 한편, 한국을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함으로써 정치외교적인 문제가 양국 간 경제와 산업협력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따라서 2008년부터 이어진 수평적 분업단계의 한·일 산업협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먼저 그동안 공고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왔던 한일 국제 분업이 일본 정부의 개입으로 일부가 무너지고 있다. 일본은 안정적인 해외시장의 잃게 되었으며, 한국은 핵심 부품소재산업의에 국산화를 추진하면서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윈-위 게임’에서 ‘치킨 게임’으로 전락하는 양상이다.

반면 미래 산업인 디지털 분야에서는 새로운 협력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네이버와 야후재팬의 경영 통합은 향후 두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한국과 일본은 앞서나가는 미국과 중국 등을 추격해야 하는 입장이다. 기술적인 격차는 물론이고 규모의 경제면에서도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 디지털 분야에서 한일 양국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이제 한·일 산업협력의 패턴은 4단계인 ‘성숙기’를 지나 5단계인 ‘변화기’로 진입하고 있다. 5단계는 인터넷 등 디지털혁명과 관련된 협력관계로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강점을 가진 분야이다. 그동안 수직적이고 의존적인 관계에서 수평적 분업으로 발전한 한·일 산업협력이 5단계에서는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