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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규의 프리즘] 돈의문을 제대로 복원하라
‘의’의 상징 돈의문 일제가 의도적으로 허물어
‘디지털 복원’의미없어…복원 대국민 약속 지켜야
2019년 12월 16일 (월) 09:13:09 조한규 webmaster@smedaily.co.kr
   
▲ 20세기 초 조선시대 한양의 서쪽 대문인 돈의문. 숭례문보다 웅장하다. 1899년 5월 개통된 전차 길 옆으로 짐을 가득 실은 소가 지나가고 있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왜 사기꾼들이 잘 살고 불의한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는가. 착한 사람들이 못살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핍박을 받는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면 친일세력과 군사독재세력은 망해야 마땅한 게 아닌가.” 그렇다. 반드시 정의가 승리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의로운 많은 청년이 좌절한다.

‘맹자’에서 답을 찾는다. “예의가 없으면 상하가 혼란하다(無禮義則上下亂‧무례의즉상하난)” 질서(禮)와 정의(義)가 없으면 사회가 혼란에 빠진다는 뜻이다. 필자는 안타깝게도 이 땅에 진정한 정의가 구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가치가 전도돼 사회가 혼란하며 ‘사필귀정’이 늦게 나타나고 있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성계와 손잡고 조선 건국의 기틀을 다진 정도전은 건국이념을 ‘맹자’에서 빌려왔다. 맹자는 원래 인간 본성은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사덕(四德)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하다고 주장했다(나중에 동중서(董仲舒)가 이 사덕에 신(信)을 덧붙여 오상(五常)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덕은 느끼거나 경험할 수 없고, 다만 사덕의 단서는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 사덕의 단서를 사단(四端‧네 가지 실마리, 뿌리)이라고 했다. 사단은 측은지심(惻隱之心‧남의 곤경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 사랑), 수오지심(羞惡之心‧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정의), 사양지심(辭讓之心‧남을 공경하고 사양하는 마음, 예의), 시비지심(是非之心‧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 지혜)이다. 

정도전은 조선을 ‘맹자의 나라’로 설계하면서 4대문에 사덕의 가치를 부여했다. 즉, 1396년(태조 5년) 9월 정동(正東)쪽에는 ‘인’을 일으키는 흥인문(興仁門), 정서(正西)쪽에는 ‘의’를 북돋는 돈의문(敦義門), 정남(正南)쪽에는 ‘예’를 숭상하는 숭례문(崇禮門), 정북(正北)쪽에는 ‘지’를 맑게 하는 숙청문(肅淸門)을 세웠다.  

맹자는 사덕 가운데 ‘의’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공자의 ‘인(仁)’을 실현하는 방안이 바로 ‘의’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도 마찬가지로 ‘의’가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배병삼 영산대교수는 ‘맹자, 마음의 정치학’에서 정도전의 혁신문명 설계, 성삼문의 절의파, 조광조의 도학정치, 임진왜란 때 의병, 최제우의 인내천(人乃天), 이항로의 단식과 황현의 자결, 안중근의 저격 등을 거론하며 맹자의 ‘의’가 조선 사람의 문화적 유전자로 구실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신흥무관학교와 의열단이 전개한 독립운동의 한 동력이 됐으며, 4·19혁명, 부마항쟁과 광주민주화운동, 6·10시민항쟁과 촛불혁명의 저변에는 그 ‘의’가 깔려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4대문 가운데 돈의문이 가장 중요한 문이었다. 한성에서 평안도 의주까지 이르는 제1간선도로의 시발점이었고, 중국에서 외교사절이 오면 국왕이 직접 마중을 나가는 문이었다. 규모도 가장 컸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돈의문은 멸실(滅失)되었는가. 1907년(고종 44년) 6월 매국노 이완용의 주장에 의해 한양도성 철거가 결정돼 그해 9월부터 숭례문 성곽 등이 헐리면서 ‘인의예지’로 둘러싸인 한양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15년 전차궤도 복선화 공사로 인해 돈의문이 헐렸다. 1915년 3월 7일 매일신보에 따르면, 조선총독부 토목국 조사과가 진행한 경매입찰에서 돈의문은 염덕기에게 205원 50전에 낙찰됐다. 그 결과 이 땅에서 ‘의’의 뿌리가 송두리째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는 일제가 벼르고 별렀던 일이다. 일제가 흥인지문, 숭례문, 숙정문은 남겨 두고 유독 돈의문만 멸실시킨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조선 ‘의’의 상징인 돈의문을 멸실시킴으로써 항일독립운동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한 상징조작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를 북돋는 돈의문’은 해방이후 지금까지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통탄할 일이다. 이승만 독재정권,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은 물론 1987년 민주화이후에도 돈의문이 복원되지 않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 희한한 일은 올해 일어났다. 지난 8월 20일 돈의문이 디지털로 복원된 것이다. 104년 만에 서울 정동사거리,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을 통해 조선시대 돈의문 풍경을 생생하게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서울 정동사거리 돈의문 체험관 앞 도로변에 설치된 AR과 체험과 2-3층에 설치된 VR을 통해 디지털로 복원된 돈의문을 봤다.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힌다. 그냥 영상일 뿐이다. 감동은커녕 비통한 심정을 느꼈다. 

서울시는 2009년 서대문 고가 차도를 철거하고 2013년까지 돈의문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계획을 발표했었다. 국립 고궁 박물관에서 돈의문 현판을 발견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봤다고 한다. 그러나 돈의문 외형 사진 몇 장, 현판 말고는 복원 근거 자료가 전무하다는 의견으로 복원이 무산됐고 대신 디지털 복원이 추진됐다는 것이다. 교통·예산·토지문제 등으로 돈의문 복원은 일단 2022년까지 중장기 과제로 미뤄졌다고 한다. 하지만 내심 ‘디지털 복원’으로 돈의문 복원을 대체할 생각일 것이다.

한 가지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은 왜 삼성그룹의 제일기획이 돈의문 디지털 복원을 갑자기 제안했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2018년 12월 당시 장종철 제일기획 비즈니스앤써(Answer) 팀장의 아이디어라고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인가. 강북삼성병원 입구가 바로 돈의문 자리이기 때문이다. 돈의문이 복원되면 자연 강북삼성병원은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이 일제가 철거한 돈의문을 앞장서서 디지털로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자칫 이로 인해 돈의문 복원이 영원히 무산될 수 있는 우려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분명히 해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돈의문을 반드시 복원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즉각 발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직도 이 땅에 엄존하고 있는 친일매국세력들의 드러나지 않은 발호와 로비로 인해 ‘정의’의 문이요 ‘의’의 상징인 돈의문 복원이 중단됐다는 국민적 비난을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돈의문을 원형 그대로 복원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되 규모를 키우면 된다. 도로 사정에 맞게 ‘웅장한 돈의문’을 세운다면 이 땅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것이다. ‘의를 북돋는 돈의문 복원’으로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이뤄야 할 것이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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