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손보·푸본현대·KDB생명 등 후순위채 발행 이어져
대형·외국계는 IFRS17 준비에 여유…업체별 희비 뚜렷
중소형사들 실적개선 못하면 '밑빠진 독 물붙기' 될수도

▲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중소형 보험사들의 '자금수혈'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 중구 롯데손해보험 본사 사옥.

[중소기업신문=이지하 기자]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중소형 보험사들의 '자금수혈'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IFRS17이 적용되는 2021년에 현재와 같은 재무건전성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해서다. 자금력을 갖춘 대형사와 새 회계기준 영향이 적은 외국계 보험사들은 IFRS17 도입 준비에 한결 여유로운 모습이지만, 일부 중소형사들은 자본확충 부담에다 실적부진 우려가 커지면서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1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JKL파트너스에 인수된 롯데손해보험은 8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메리츠종금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했으며, 이달 중 채권 만기와 금리 등 구체적인 조건을 결정해 투자자 모집에 나설 계획이다. 

앞서 롯데손보는 지난 10월 빅튜라와 호텔롯데를 대상으로 제3자배정 방식으로 375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JKL파트너스가 설립한 유한회사이자 롯데손보의 최대 주주인 빅튜라는 3562억5000만원를 들여 증자에 참여했다. 롯데손보와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기로 한 호텔롯데도 187억5000만원을 출자해 기존 5% 지분율을 유지했다.

지난 9월 말 기준 롯데손보의 지급여력(RBC)비율은 141.38%로 금융당국 권고치(150%)에도 못 미쳤지만, 대규모 증자 이후 190%대로 올라섰다. 이후 후순위채 발행이 마무리될 경우 RBC비율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RBC비율은 보험사가 예상하지 못한 손실이 발생할 경우 보험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는 여력을 보여주는 재무건전성 지표로, 가용자본(지급여력금액)을 요구자본(지급여력기준금액)을 나눠 산출한다. 보험사들은 보험업법 상 RBC비율을 최소 100% 이상 유지해야 한다.

메리츠화재도 지난달 초 2500억원 규모의 10년 만기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이는 지난 4월 2500억원에 이어 7개월 만에 추가로 자본확충에 나선 것이다. 메리츠화재의 RBC비율은 3분기 말 기준 223.2%로 올 1분기보다 6.5%포인트 상승했다. 

푸본현대생명 역시 지난 10월 1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푸본현대생명은 지난 7월에 열린 이사회에서 내년 1분기까지 총 2000억원 이내의 후순위채를 통한 자본확충을 실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9월 초 사모방식의 500억원 규모 후순위채 발행 이후 이번 공모발행까지 올해에만 1500억원의 자금을 확충했다. 3분기 말 기준 RBC비율은 251% 수준이다. 

KDB생명은 올 상반기 990억원의 후순위채에 이어 10월에도 12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이로써 KDB생명의 RBC비율은 225.52%(3분기 말)로 올 1분기(212.79%)보다 상승했다. 

이처럼 중소형보험사들이 자본확충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IFRS17 도입을 앞두고 선제로 대응하기 위한 조처로 풀이된다. 새 회계기준 도입이 사실상 2년여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앞으로 재무건전성 규제 강도가 높아지면 RBC비율이 저조한 중소형사들의 자본확충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새 회계기준의 핵심은 보험부채를 평가하는 방식을 원가에서 시가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기준이 적용되면 과거 고금리 확정형 상품을 많이 판매한 보험사를 중심으로 부채가 크게 늘어나게 되고, IFRS17이 적용되는 2021년에 현재와 같은 RBC비율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IFRS17 도입이 현실화하면 업체별 재무안정성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자금력을 갖춘 대형사와 과거 고금리 확정형 상품 비중이 적어 보험부채 시가평가의 영향이 적은 외국계 보험사들은 자본확충 부담이 크지 않지만, 실적부진에 허덕이는 중소형사들은 당장 자금수혈에 성공한다고 해도 앞으로 적정 수준의 RBC비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건전성 확보가 시급한 중소형사들이 자본확충에 나선다고 해도 실적개선이 병행되지 않으면 '밑빠진 독에 물붙기'가 될 공산이 크다"며 "당기순이익이 줄어 RBC비율이 하락할 경우 또다시 대규모 자본확충에 나서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