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佛 중동 분할로 ‘난민 사태’ 원죄 있지만 책임 안져
일본도 과거 침략 반성 않고 오히려 자국 이익만 몰두
늦었더라도 책임 지우게 할 방안 국제적으로 마련해야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최초로 세계적 차원의 난민 관련 회의가 열렸다. 유엔난민기구(UNHCR)와 스위스 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한 '제1회 글로벌 난민 포럼'(Global Refugee Forum)이었다.

116개 회원국 관계자, 인도주의 단체, 난민 등 3000여명이 참석한 이 포럼은 독일, 터키 등 중동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는 2개의 유럽 국가를 비롯해 남미의 코스타리카,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그리고 파키스탄 등 5개국을 공동의장국으로 선정해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난민 문제를 논의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전 세계적으로 난민을 포함한 강제 이주민이 7천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급격히 증가한 숫자다. 

세계적 차원의 논의가 필요할 정도로 난민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가장 최근에, 가장 대규모로 난민이 발생하고 있는 곳은 중동지역이다. 이곳에서 발생한 난민들은 주로 유럽 국가로 이주하거나 밀입국하고 있다.

‘글로벌 난민 포럼’의 공동의장국이었던 독일과 터키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중동 난민은 각각 110만 명과 370만 명이다. 터키가 수용한 난민 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이 때문에 터키는 난민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터키는 지원이 없을 경우 수백만 명에 달하는 터키 내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도록 문을 개방하겠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중동 난민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유럽 국가들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책임은 식민 제국주의 시절의 영국과 프랑스에 있다. 두 나라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5월, 독일과 동맹국이던 오스만 제국의 힘을 빼기 위해 오스만 제국이 통치하던 중동지역을 비밀리에 나눠먹기로 하고 협상을 벌였다.

영국은 지중해와 요르단 강 사이 일부와 지금의 이라크, 요르단을 가져가고, 프랑스는 이라크 북부 일부와 시리아, 레바논을 차지하기로 했다. 이 분할에서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 갈등이나 부족성이 강한 아랍 무슬림의 역사·문화·종교적 요인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영국과 프랑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을 그었다. 오늘날 중동 지역 국가들의 국경이 대체로 부자연스러운 직선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수니파가 살던 알레포가 시아파의 분파 알라위파가 지배하는 시리아와 묶였고, 수니파 중심 도시 모술도 시아파 대도시 바그다드와 한 나라가 됐다. 여기엔 1910년 중반 발견된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석유를 차지하려는 영국의 노림수가 크게 작용했다. 이 협정은 영국의 외교관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스 외교관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의 이름을 따 후에 ‘사이크스-피코 밀약’으로 이름 지어진다.

오늘날 중동지역에서 난민이 발생하는 이유는 과거 이 두 나라가 그은 선이 분쟁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 갈등이나 아랍인들의 부족성을 무시하고 그은 선을 무효화시키기 위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니파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을 무시하겠다고 선언한 데서 ‘사이크스-피코 밀약’에 대한 아랍인들의 반감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도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는 이 같은 근원적인 책임을 회피하면서 난민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소극적이다. 뉴욕타임스는 유럽연합(EU)이 지난 5월 추진했다가 무산된 '난민 분산수용 할당제'를 적용, 유럽 각국이 실제로 수용한 난민 수와 비교한 결과 영국과 프랑스는 이 기준에 못 미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식민 제국주의 시대에 번성기를 구가하던 국가들의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 수 없다.

시선을 동쪽으로 돌려도 부끄럽고 무책임한 식민 제국주의 시대의 잘못된 민낯을 드러내는 국가는 있다. 바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태평양 전쟁의 혼란 속으로 몰아넣은 일본이다. 일본 역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하기는커녕 전범기를 내세우는 등 여전히 이웃 국가들을 도발하며 자국의 이익에만 집착하고 있다.

이들 나라들을 보면 아무리 지나간 과거의 잘못이라 해도 제대로 책임을 묻지 않으면 모두의 피해로 돌아오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늦었더라도 책임을 지우게 할 방안을 국제적으로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야 다시는 이기적인 과오를 범하지 않게 될 것이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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