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핵 보유하자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잇따라 개발
경제 제재 통한 핵 확산 저지 효용성 떨어져 새 방안 모색해야

미국이 이란 군부의 실세인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살해한 이후 격화됐던 미국과 이란의 긴장 관계가 조금은 수그러진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무력 대신 경제 제재를 활용해 이란을 압박하겠다는 입장이고,이란도 더 이상의 확전을 원치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솔레이마니 살해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이 단행한 이라크 주둔 미군 기지에 대한 미사일 공격도 사전에 통보해 대비토록 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을 정도로 확전의 의도보다는 이란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려는 의도가 더 강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 주둔 미군 기지에 대한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서 미국인 사상자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면서 "미국은 즉각 이란 정권에 추가 경제 제재를 부과할 것이며, 강력한 제재는 이란이 행동을 바꿀 때까지 유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이처럼 양측이 서로 확전을 원치 않는 만큼 불안했던 중동지역의 긴장도 급속히 완화될 것이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도박이 성공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겉으로는 평온을 되찾는 것 같다. 하지만 수면 밑에서는 거대하고 복잡한 변화가 전개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 재가동이 될 것이다. 사실 미국이 솔레이마니를 살해하기 이전부터 이란은 핵 재개발에 대한 의지를 보여 왔었다. 그 역시 핵 억지력을 통해 ‘경제 제재’를 들먹이는 미국의 이율배반적인 행동 때문이었다.

이란이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과 함께 핵 개발을 추진해 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처럼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던 이란은 지난 2015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와 독일 등 6개국과 비핵화 협정, 즉 ‘이란 핵 협정’을 맺고 비핵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미국은 2018년 이란에 대한 지속적인 경제 제재가 필요하다며 여기서 탈퇴하고 말았고, 결국 이란도 이에 맞서 지난해 5월 핵개발 프로그램 재가동을 선언했던 것이다.

1945년 8월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자탄 투하를 통해 가장 먼저 핵을 보유하고 있음을 드러낸 미국은 핵 억지력을 통해 우방은 물론 적대국가의 핵 개발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성공한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란 핵 협정’탈퇴와 같은 자국 위주의 이율배반적인 정책으로 핵 확산을 조장한 면마저 보여 왔다.

핵폭탄이라는 새로운 무기는 등장과 동시에 국제정치 무대의 균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핵무기의 독점을 원했다.미 의회는 1946년 8월 우방국을 포함해 어느 나라에도 핵무기 기술을 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자력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당시 소련의 스탈린은 “핵무기의 역할은 상대를 극도로 긴장시키는 데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소련도 서둘러 핵무기 개발에 나서 1949년 8월 첫 원폭실험에 성공했다. 일본에 대한 원자탄 투하 이후 4년 만에 미국의 핵 경쟁국이 탄생한 것이었다. 물론 소련은 미국의 핵무기 공격을 받을 우려에서 해방됐다고 생각했다. 핵 억지력을 핵 억지력으로 막은 것이었다.

이는 핵무기 개발에 대한 도미노를 불러왔다. 소련의 핵무기 개발에 놀란 강대국들은 광범위한 군비증강 프로그램 마련했다. 미국과 소련의 우방국들도 서둘러 핵무장 경쟁에 나서 영국은 1952년 첫 핵실험에 성공했고, 프랑스는 1960년, 중국은 1964년 핵 실험에 성공해 미국과 소련의 핵 억지력을 무력화시켰다.

특히 프랑스의 핵 개발은 미국과 이란, 이라크가 얽혀있는 최근의 중동 상황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복잡한 역학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1956년 이집트의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고 이집트를 공격했다.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친아랍 정책을 실시하던 미국은 이것이 아랍 민족주의자들과의 화해를 방해한다고 생각해 두 나라에 ‘경제 제재’를 가했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굴복하고 말았지만, 미국이 나세르를 지원하는 것을 본 프랑스는 미국을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해 1960년 핵실험에 성공했던 것이다.

프랑스는 당시 이를 통해 전략적 자신감을 높일 수 있었다. 이후에도 공개적으로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가 핵무기 개발에 나선 건 프랑스와 같은 전략적 자신감을 지니기 위해서였다. 물론 북한과 이란이 1990년대에 핵무기 개발에 착수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이란 핵 협정’을 통해 핵무기 개발 포기를 선언했던 이란이 미국의 변심을 계기로 다시 핵무기 개발에 뛰어들려든 것처럼, 경제 제재는 오히려 핵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공언한 경제적 압박에 맞서 이란은 어떻게 해서든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할 것이고, 이는 역학관계상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웃 나라들의 핵무기 보유 도미노로 이어질 것이다.

북한도 다시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란과의 핵 협정을 헌신짝처럼 버린 채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경제 제재도 계속한다는 미국의 정책을 확인한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재가동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동북아도 중동처럼 핵무기 개발이 확산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북한에 맞서 핵 억지력을 갖추겠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핵 억지력과 경제 제재를 통한 핵 확산 저지가 이처럼 효용성이 떨어지고 상황에서 과연 핵 확산을 막는 새로운 방안은 무엇일지, 미국은 물론 세계인들 모두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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