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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 박사의 알기 쉬운 경제] 아무도 전기차를 죽이지 않았다
환경 문제 해결과 시장 성숙이 전기차 성공 요인
2020년 01월 14일 (화) 14:16:31 이원호 webmaster@smedaily.co.kr

음모론(Conspiracy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그 배후에는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스런 단체가 개입되어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격동기나 혼란스러운 시기에 음모론이 많이 유포되는데, 최근에는 유튜브 등 SNS를 통해서 널리 퍼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음모론으로는 ‘911 테러 미국 정부 자작설’, ‘아폴로 11호 달착륙 연출설’ 등이 있다. 성경, 프리메이슨, 히틀러 관련 이야기도 음모론의 단골 소재다. 이러한 것들을 듣고 있자면 아주 흥미롭고 그럴 듯 해 보인다. 하지만 따지고 들어가 보면 논리적으로 허점투성이고 상식적으로 앞뒤 말이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술자리와 같은 친목모임에서 흥미진진하게 풀어 놓기 딱 좋은 수준 이상의 가치는 없어 보인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유명한 음모론이 하나 있다. 과거 전기차가 나왔다 금세 사라진 이유가 메이저 석유 회사 등 반대 세력들의 로비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이 음모론은 2006년 크리스 페인(Chris Paine) 감독이 ‘누가 전기차를 죽였나(Who Killed The Electric Car)’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영화의 내용은 갑작스레 용도 폐기된 GM의 첫 전기차 EV1에 관한 이야기다. EV1을 아끼던 사람들이 자동차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시대를 앞서간 전기차가 왜 사라졌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1996년 GM은 전기차 EV1을 내놓았다. 이 전기차는 137마력의 힘으로 최고속도 시속 130㎞를 낼 수 있으며 1회 충전거리도 최대 160㎞나 되었다. 차체 또한 알루미늄 합금을 사용한 유선형으로 설계해 무게와 공기저항을 낮춰 당시 획기적인 제품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6년 후 GM은 개발 중이던 EV1을 전량 폐기 처분해 버렸다. 

GM 측에서는 개발 중단의 원인을 배터리의 기술적인 문제와 연구개발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영화는 석유업계 로비설과 다른 완성차업체의 조직적인 방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전기차 개발을 중단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이 음모론은 매우 그럴 듯하게 보인다. EV1이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두게 되면 세계 자원시장을 쥐락펴락하던 메이저 석유회사들은 파산이 불가피하다. 경쟁 완성차업체들도 전기차 분야에서 GM의 기술력을 추격하는 이류 업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보니 시대를 앞서 간 제품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원인에는 누군가가 뒤에서 음모를 꾸며 퇴출시켰다는 시나리오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아무리 우수한 제품을 개발해도 시장이나 기업의 경영 상황에 맞지 않다면 얼마든지 사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EV1이 사라졌던 2002년을 전후해서 GM은 금융 부문에서 나오는 수익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경영 상태가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제조 부문에서 수익을 거의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기차 시장이 성숙하기를 기다리며 장기적으로 투자하기에는 GM으로서는 크게 무리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물론 석유업자들의 로비와 경쟁 완성차업체들의 방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EV1이 사라진 주 원인은 전기차가 굴러가기 위한 인프라 부족과 GM의 경영 상태 악화가 EV1이 사라진 결정적이다.

그런데 전기차 EV1이 시장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이 첫 번째가 아니다. 20세기 초에도 전기차는 광범위하게 운행되었다. 1900년 세계 전체 자동차 생산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가 되었다. 하지만 1908년 포드자동차가 가솔린 모델의 대량 생산체계를 구축하고, 미국 텍사스에서 대량의 유전이 개발되면서 전기자동차의 입지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1912년이 되면 전기차는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당시에도 전기차는 기술적으로 뛰어났지만 규모의 경제에 다다른 가솔린 모델의 경쟁력에 밀려 시장에서 퇴출된 것이다.

전기차가 20세기 초와 21세기 초 두 번에 걸쳐 세상에 나왔다가 잠깐 주목을 받고 사라진 이유는 결국 시장이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숨겨진 음모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지구 환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내연기관 자동차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면서 전기차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더욱이 디지털 혁명에 힘입어 기술적으로도 전기차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등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나온 뉴스를 보면 지난해 노르웨이의 경우 지난해 판매된 신차의 42.4%가 전기차일 정도로 빠르게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지금 전기차 시장이 확대되는 것은 음모론이 없어서가 아니라, 앞선 두 번의 경우와 달리 시장이 전기차를 받아들이는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전기차는 죽이지 않았다. 다만 예전에는 시장이 전기차를 받아들일 만큼 성숙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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