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이 전 총리가 더블스코어차로 앞서
정권 심판론보다 초당적 방역 대책 세워야

나라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다. 자칫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형국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경제가 위축되고 있고, 민생도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상황이 아니다. 재앙(災殃) 그 자체다.  

그럼에도 여야 정치권은 초당적 대책 마련에 미온적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우한 폐렴) 대책 특위 구성 및 보건복지위원회 개최에 합의했지만, 특위 명칭을 놓고 티격태격하고 있다. 2월 임시 국회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여야 모두 21대 총선에만 몰두해 있다. 

그래서 ‘이낙연 대 황교안’의 빅 매치에 국민은 열광은커녕 쓴 웃음을 짓는다. 3명의 대통령, 1명의 내각제 총리, 3명의 제1야당대표를 배출한 ‘정치1번지’ 서울 종로는 그저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두 전직 총리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볼 심산이다. SBS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지난달 28~30일 종로구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 SBS가 지난 2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이낙연 전 총리와 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가상대결에서 이 전 총리는 53.2%, 황 대표는 26.0%의 지지율을 각각 기록했다. 이 전 총리가 황 대표를 ‘더블 스코어’로 앞섰다(자세한 결과는 SBS뉴스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런 상황에서 솔직히 황 대표가 왜 종로에 출마했는지 의문이다. 선거판세 등 여러 가지 선거요인을 분석하면 할수록 황 대표의 선택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여론조사는 과거와 다르다. 조사방법이 나날이 진보해 정확도가 높다. 특히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법이 발전했다. 다만 여론조사 대상의 기본 숫자인 1000명이 아니고 그 절반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라는 점이 걸릴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53.2% 대 26.0%’의 격차는 쉽게 좁혀질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큰 격차다. 큰 이변이 없는 한 4월 15일 선거일까지 그 격차가 지속될 수도 있다.   

첫째, 이 전 총리가 얻은 53.2%의 지지율은 정세균 총리가 얻은 19대 총선의 52.26%, 20대 총선의 52.60% 득표율을 살짝 상회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전 총리의 지지율은 ‘대선주자 선호도 1위’이기 때문에 저절로 나온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는 정 총리가 지난 8년 동안 다지고 다진 조직과 지지기반을 그대로 물려받았음을 웅변한다. 이 전 총리가 실수만 하지 않으면 52%대의 득표율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둘째, 2018년 6월 13일 제7회 지방선거에서 얻은 민주당의 득표가 결코 적지 않다. 우선 종로구 기초단체장선거 결과가 말해준다. 당시 민주당 김영종 후보는 5만1305표를 얻어 64.3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당 이숙연 후보는 1만9628표로 24.62%, 바른 미래당 김복동 후보는 8765표를 얻어 10.9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앞으로 한국당과 새로운 보수당이 통합해 한국당 후보가 종로에서 이숙연 후보와 김복동 후보가 얻은 표를 모두 가져간다고 해도 산술적인 득표율은 김영종 후보가 얻은 득표율 64.37%의 절반에 가까운 34.61%(24.62%+10.99%)에 불과하다. 특히 이 득표율은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오세훈 후보가 얻은 39.72%의 득표율에 근접한다.

셋째, 지역정치지형으로 볼 때도 이 전 총리가 우세할 것으로 관측된다. 20대 총선 당시엔 종로의 서울시의원은 민주당과 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 소속이 각각 1명씩이었다. 구의원도 민주당 6명, 새누리당 5명이었다. 거의 반반이었다. 하지만 21대 총선을 두 달여 앞둔 2월 10일 현재 종로의 서울시의원 2명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구의원도 민주당 소속이 8명, 한국당 소속은 3명이다. 이처럼 현직 구청장과 서울시의원이 민주당 소속이고, 11명의 구의원 중 8명이 민주당 소속이라는 점은 무엇을 말하는가. 김영종 종로구청장이야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지만, 시의원과 구의원들은 자기 선거나 마찬가지로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런 지역정치지형에선 황 대표가 ‘반문재인 세력’을 결집한다 해도 솔직히 금배지 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넷째, 종로의 바닥민심도 황 대표에게 유리하지 않다. 평창동, 혜화동에 이어 3번째로 인구가 많은 청와대 인근의 청운효자동(1만2734명) 주민들은 보수단체들의 청와대 앞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불만이 팽배해 있다. 보수적인 서울 토박이들이 주류인 주민들은 황 대표와 가까운 전광훈 목사의 반정부집회에 대해 “고성과 막말 욕설, 무서워서 못 살겠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서울맹학교 학부모와 졸업생, 청운효자동 주민 대표 50여명이 지난 8일 경복궁역 일대에서 태극기혁명운동본부의 행진을 막기 위한 집회를 열었겠는가. 청운효자동뿐만 아니라 사직동, 삼청동, 부암동, 평창동 주민들도 집회 소음에 시달리고 교통 불편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황 대표가 이번 선거에서 ‘문재인 정권 심판’을 외친다고 해도 당장 일상생활에서 큰 불편을 겪고 있는 이곳 주민들의 표심을 얻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는 “종로가 아니면 불출마하라”는 당 안팎의 압박과 권유에 떠밀려 출마를 선언했지만 이처럼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살신성인의 결단’이란 아부에 현혹되지 말고 현실을 냉철하게 바로 봐야 할 것이다. “종로 선거는 후보 간 대결의 장이 아니라 무지막지한 무법왕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결”이란 발언은 선거현실과는 크게 동떨어진 느낌이다. 진짜 상대는 이 전 총리가 아닌가. 당선되려고 출마한 것인지 ‘정권심판론’을 홍보하려고 출마한 것인지 자못 헷갈린다. 선거는 선거로 봐야 한다. 그리고 ‘정권심판’보다 신종 코로나 예방과 치료가 ‘민생’의 핵심이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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