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 세계대전서 패했지만 경제력 앞세워 유럽 주도
침략 마인드 버리고 진정한 유럽 지도국 될지 지켜봐야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공식 탈퇴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유럽연합과의 관계를 떠나 여러 면에서 유럽을 이끌어온 것으로 비춰지던 영국이지만 사실 영국이 유럽연합을 주도해본 적은 없다. 주요 국가이긴 했지만 유럽연합의 정책 결정을 이끌기 보다는 주변국가처럼 겉도는 모습이 많았다. 유럽연합 탈퇴 과정에서도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그동안 보여준 요란함 때문에 큰 파동이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뿐이다.

영국의 요란함과는 달리 독일은 있는 듯 없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유럽연합의 핵심 국가로서 모든 정책을 사실상 이끌어 왔다. 영국과 독일에 대한 엇갈린 인식은 각각 승리자와 패배자라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영국은 승리했고 독일은 패배했다. 그래서 영국은 유럽을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유럽의 세력 구도가 영국이 구상한대로 짜여지곤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1588년 무적함대를 이루던 스페인을 칼레 해전에서 패퇴시키며 해상 주도권을 거머쥔 일,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프랑스의 유럽 장악을 무산시킨 일, 20세기 중반 역시 유럽 장악에 나선 히틀러의 독일 나치를 멸망으로 이끈 일 등이 그 사례들이다.

사실 섬나라인 영국은 필요에 따라 대륙 문제에 개입하거나, 또는 외면하거나하는 두 가지 정책을 적절히 활용하며 국익을 챙겨왔다. 영국의 ‘대륙 개입’, 또는 ‘대륙 외면’ 정책이 주변 나라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지만 유럽 각국이 인내를 보인 이유는 그 결과가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 내에서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될 때마다 영국은 가장 강력한 국방력을 앞세워 만족할만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유럽을 장악하며 기세등등하던 영국과 달리 독일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모두 참패한 직후 주변 강국들의 압박에 휘둘리며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나마 국경을 접하고 있는 프랑스가 구원의 손길을 내주었다. 바로 1952년 프랑스가 독일을 설득해 유럽연합의 뿌리가 되는 석탄철강공동체를 구성한 것이다.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프랑스는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키며 유럽을 정복하고자 했던 독일의 야심을 꺾는 방안은 독일을 경제적으로 묶어놓는 방법뿐이라고 생각해 두 나라의 석탄과 철강 산업을 하나로 묶는 석탄철강공동체를 만들어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과 함께 관리했다.

당시 독일도 거듭된 침략 전쟁으로 인해 유럽인들의 미움을 사고 있었기에 프랑스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영국은 이때도 생각이 달라 석탄철강공동체 참여를 자제한 채 프랑스와 독일의 협력 관계를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영국이 석탄철강공동체 시절이 아닌 유럽경제공동체(EEC) 시절인 1973년 EEC에 가입해 뒤늦게 유럽 대륙 국가들과 경제적 유대를 강화한 것도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른 정책 변화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앞으로는 국방력보다 경제력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됐다. 국방력을 앞세웠던 영국이 빠진 유럽연합은 이제 경제력을 무기로 한 독일이 주도하게 될 가능성이 크고, 이미 독일은 사실상 유럽을 주도하고 있다.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 생각해보면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주변 여러 나라들이 피를 흘려가며 막으려고 했던 게 독일의 유럽 지배 아니었던가? 전쟁 시기가 아닌 평화 시기이긴 하지만 독일이 ‘지배’하게 된 유럽을 보는 과거 유럽의 지도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독일인들은 오래전부터 경제적인 발전이 다른 나라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1979년 당시 독일 수상을 지낸 헬무트 슈미트는 공식석상도 아닌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이런 말을 했다. “독일인들은 항상 주의해야 한다. 지난 10~15년 사이에 상대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독일이 너무 크고, 너무 중요해졌다는 인식을 갖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은 결국 경제력이 유럽을 장악할 것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경제력을 앞세운 독일은 과거 침략 마인드를 벗고 진정한 유럽의 리더가 될 수 있을까?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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