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만기친람으로 국정운영 문제 드러나
과감한 권한위임으로 코로나19 사태 극복해야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대응은 ‘세계의 모범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완벽한 조기진단 시스템, 투명한 정보 공개, 관련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의료진의 신속한 치료, 자원봉사자들의 헌신 등 어디 하나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경기도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별로 적극 대응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만하다.

그러나 ‘31번 확진자의 전파’, ‘신천지 신도 집중 확산’ 등으로 완벽한 방역시스템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확산속도가 너무나 빠르다보니 정부의 대책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자연히 정부는 ‘뒷북’을 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비상사태, 최악의 상황에 대처하는 국정운영시스템에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7일부터 약국과 우체국·농협을 통해 마스크 500만장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음날 국민은 마스크를 쉽게 구입할 수 없었다. 정부 발표와 실제 현장공급 시점에 차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국민의 불만은 극도에 달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격노했다는 소식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이의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으로부터 마스크 공급대책에 대한 보고를 받고 “정부 담당자들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문제점을 파악해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정책과 현장의 괴리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13일 대기업 대표, 경제 5단체장 간담회에서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보고서를 보고 누구의 말을 듣고 이런 발언을 했는지는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발언 직후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야당과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문 대통령이 지난 25일 대구를 방문해 특별대책회의를 가진 것도 타이밍이 적절하지 못했다. 그날은 정세균 총리가 코로나19 사태를 현장에서 지휘하기 위해 대구에 상주하기 시작한 날이다. 정 총리가 대구에 가겠다고 하니 부랴부랴 문 대통령이 내려간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많다. ‘대구봉쇄’ 발언 파문을 차단하기 위한 정무적 판단도 있었겠지만, 확진자 증가세가 멈추고 사망자가 나오지 않는 시점에 맞춰 문 대통령이 대구를 방문해야 했다. 또한 정 총리의 현장 지휘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사태가 대구 경북에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될 경우 ‘대통령 대구 방문’이란 최후의 카드를 사용해야 했다. 지금은 신천지 신도들 때문에 사태가 커지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코로나19의 위기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계속 ‘뒷북’을 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시(戰時)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왜 이런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가. 발언도 타이밍도 도무지 맞지 않고 있다.

최근 퇴직한 정부의 고위공직자는 이런 말을 했다. “정부 내부에서 토론이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그랬다. 청와대가 모든 것을 다하기 때문에 장 차관과 실 국장들의 할 일이 거의 없다.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은 물론 심지어 행정관들까지 모든 인사와 정책에 관여하고 있다. 권력을 즐기는 것 같다. 그러니 공무원들은 손을 놓고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아니지 않는가. 집중토론을 통해 철저한 검증을 거치지 않는 보고서가 청와대에 전달되고 있다면 참으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코로나19 대책 매뉴얼이 과거 메르스 대책 매뉴얼을 그대로 베낀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코로나19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투자은행인 JP모건은 지난달 24일 ‘Asia Pacific Equity Research’에서 “한국의 코로나19 감염은 3월 30일쯤 정점을 찍어, 감염자 수가 최대 1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물론 이런 전망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수도 있다.

정부의 정책 담당자들은 항상 최악의 위기상황을 상정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청와대 참모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 내부에서 집중토론과 정밀검증이 없는 정책이 청와대로 올라오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각 부처 공무원들을 들들 볶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그동안 정부 부처 공무원들에게 행사했던 ‘권력’을 내려놓고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해법은 임파워먼트(empowerment), 즉 ‘권한위임’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비서실장을 포함해 모두 대통령 비서다. 대통령 비서, 즉 비서실장 수석 비서관 행정관에겐 ‘행정권’이 없다. 행정권은 대통령만 갖는다. 대한민국 헌법 어느 조항에도 ‘대통령 비서’에 대한 규정은 없다. 헌법기관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은 헌법기관이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를 계기로 청와대 참모들은 총리와 장 차관들에게 행정 권한을 위임해야 할 것이다. ‘세계의 모범사례’가 빛이 바래지 않도록 지혜를 발휘하기 바란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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