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나섰지만 미국의 두꺼운 ‘유리천장’에 좌절
대처·메르켈 등 좋은 평가…美여성대통령 시간 문제

2000년대 들어 미국 대선 때 마다 등장하는 화두 중 하나는 여성 대통령이다. 즉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언제 탄생할 것이냐다. 이 같은 화두에 힘입어 지난 2016년 대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의 대선 주자로 선택돼 본선까지 치렀지만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에게 패해 여성 대통령 탄생이라는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여성들의 도전이 사라진 건 아니다. 올 대선 경쟁에서도 여성 주자는 있었다. 대표적인 후보는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었다. 하지만 올해 미국 대선 레이스에서 사실상 마지막 남은 여성 주자였던 그녀 역시 중도 하차하면서 이번에도 미국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의 꿈은 사라졌다.

워런이 후보에서 사퇴한 가장 큰 이유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치열한 양자 대결 속에서 존재감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워런은 경선 일정이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해까지만 해도 바이든 전 부통령, 샌더스 의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오히려 더 앞설 정도의 유력 주자였다는 점에서 그녀의 몰락은 지지층은 물론 여성계를 안타깝게 했다.

그녀가 멈춘 핵심적인 이유는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즉 미국인들이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을 기대하면서도 여성은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즉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을 이끌 대통령으로서 여성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미국인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말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강대국에서 여성 지도자가 탄생한 예는 많지 않다. 오늘날 강대국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가운데 여성 지도자가 탄생했던 나라는 영국이 유일하다.

그런데 영국 첫 여성 지도자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보면 여성 지도자가 강대국 국민이 기대하는 기준에 미달한다는 생각 자체가 근거가 뚜렷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대처의 경우 오히려 여성 지도자이기 때문에 남성 지도자들이 하지 못한 과감한 정책을 펴거나 국정 개혁을 단행해 국력을 신장시켰다. 

대처는 1979년 영국의 최고 권력자인 총리에 처음 취임한 뒤 1990년까지 3차례나 연임할 정도로 성공한 지도자로 꼽힌다. 강력한 반공산주의 노선을 주창해 구소련 지도층으로부터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그 별명이 오히려 그녀의 강력한 통치력과 맞물려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1982년에는 아르헨티나가 10주 동안 점령했던 포클랜드 제도를 전쟁을 통해 재탈환하는 데 성공했으며, 전쟁 중에 대처가 보인 과단성과 지도력은 다른 나라 지도자들에게도 귀감이 됐다. 이후에도 내각의 엄격한 규율, 강력한 통화주의정책, 노동조합에 대한 법적 규제의 확대 등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했다.

강대국 대신 선진국이라고 평가받는 나라에서는 꽤 많은 여성 지도자들이 나타났고, 지금도 통치자로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005년 독일 여성 최초로 총리에 오른 뒤 지금까지 4번 연속 총리 자리를 지키고 있다. 권력을 내세우지 않으며 조용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이를 그녀의 이름에 빗대어 '메르컬리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카트린 야콥스토티르 아이슬란드 총리와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도 대표적인 여성 지도자로 꼽히고 있으며, 이들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여성 지도자를 지닌 나라는 20여 개국에 이른다. 우리도 비록 국정운영에 실패해 탄핵을 받고 수감돼 있긴 하지만 여성 대통령이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미국의 여성 대통령 탄생도 시기의 문제일 뿐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문제는 그 시기인데, 그 시기를 앞당길 요인은 당연히 여성이라는 이유로서가 아니라 대통령 자리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 여성 정치인이 나타날 것이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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